2004-05-28

사회과학 대학 과제 도서실

  • 과제 도서실
  • 사석, 허전함

사회과학 대학 과제 도서실, 참 익숙한 곳이다. 그곳에 살다시피 하는 이도 있지만, 비교 할 필요는 없고. 하여간 참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추억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그래도 하얗고 파란 벽과 머리 위 높이의 창문을 고등학교 시절 추억이라고 우겨대지 않았던가?) 아무튼 참 친숙하다. 고양이가 태어나서 늙어 움직이기도 귀찮아 할 때까지 살아온 집에 대해 느낄만한 정도의 친숙함이라고 할까?

14:47. 과제 도서실을 둘러보니 10여명 남짓, 빈자리 2 정도. 나머지 모두 사석. 지나치게 우연적인 상황이었나? 그렇게 사람이 적은 적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하긴 예전 기억에는 그런 적이 꽤 있었다. 근래에 와서 내가 과제 도서실을 이용하지 않아서 많이 황량하다고 느꼈을 뿐이겠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근래 수업이 끝나면 쉬이 집에 돌아온다. 동아리 활동도 적어졌고, 동호회 활동도 적어진 데다, 사회적인 활동도 적어진 탓이리라. 4학년이라는 것이 하나의 설명이 될 것이다. 참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학년 때에는 4학년들은 바쁘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이 부분도 전에 한번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주 후면 기말고사. 그리고 조금 후에 졸업. 그래… 새로운 시작을 할 때가 점점 되어가는 것이겠지. 새로운 시작 전에는 당연히 어떤 끝이 있겠고.

욕구: 권력

  • 욕구: 권력
  • 정보
  • 언론

학군단 하려고 했을 때/합격 했을 때/훈련 받을 때(훈련 받았다고 할 것도 아니지만), 정보와 관련된, 수사와 관련된, 어쨌거나 공적인 정보가 있는 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무사나 그런 곳.
정말 몰랐다. 영화에서나 있을 것이라는 혹은 나와는 상관 없는 다른 곳에서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있었다.
요 근래에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한 영상물 두개를 보았다. 과연 조작되고, 통제되며 살고 있는 것인가? 소스라치게 놀라 괴성을 지르며 물어야 할 것 같지만, 덤덤히 그런 질문을 해본다. 누가(행위의 주체라는 것은 부정하고 싶지만 그래도 명확히 알고 싶기에), 왜 했는가. 무엇을 위해 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하도록 했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알고 싶지 않다. 외부의 압력이나 상황에 떠밀려 알고 싶다는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내가 그런 알고 싶다는 욕구를 포기하고 싶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다. 그 사건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알게 된다면, 어떠한 변화가 나타날까? 두렵다.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선택의 자유는 책임을 의미한다. 알고 싶다는 욕구(욕구가 있다고 해서 알기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며, 알기 위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를 갖는 자유가 있다. 또한 갖지 않는 것도 자유다. 알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경우, 이에 연계해서 발생하는 것에 대한 책임 또한 지어야 한다.
이 사회의 구성원에 속하는가? 그렇다면 관여해야 하는가? 동떨어져 관여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선택의 자유는 있는가?
의문 뿐이다. 정답은 없다. 부디 적당한 답을 찾기 바란다.

근래에는 언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학교 신문에 글을 몇 번 썼던 것들에서 이런 욕구가 보상되었고, 또 그런 행동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관심도 위 정보에 대한 관심과 다르지 않다. 그것에서 느낀 것은 권력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더 탐색해 봐야겠다. 아무튼 이 두 가지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이 문제는 내가 언제나 느끼는, 불안이라는 문제와 연결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04-05-25

부담감

  • 논문
  • 과제

논문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진척이 별로 없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과연 내가 원래 의도했던 것인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햇갈린다. 주제를 정한지는 조금 되었고, 주제를 정할 때에 내용도 얼추 맞추어 놓은 것이었지만, 주제와 내용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서 아무래도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논문을 쓰면서 주제와 내용이 많이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논문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쓰는 대로 계속 이어서 일단 끝내야겠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것 저것 과제가 여러 가지 남아있다. 논문과 병행해서 하고 있기는한데, 논문과 마찬가지로 진척이 없다. 게획이나 대충의 내용은 생각해 두었는데, 막상 내용을 쓰려고 하면 계속 머뭇거린다. 집중도 못하는 것 같고. 시간이 지날 수록, 처음 높게 잡았던 목표들은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다. 어쩌면 나 자신이 추락하는 것인가?

어떻게든 이번 주 내로 끝내야겠다.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끝낼 수 있갰지. 의지를 가지고 한번 해보자. 이 때 아니면 또 이런 일을 해보겠어.

2004-05-19

bekrage 서버 이전

  • bekrage 서버 이전

얼마 전에 예고 했던 대로, bekrage 사용자들의 자료를 새로운 서버로 복사했다. 서버 이전이 완료되면, 이전 bekrage 서버는 이은진님이 회수 하겠지.
작업 내용은 크게 어려운 것이 없었는데, 실수를 하나 했다. 실수로 mysql에 있던 database 자료 백업한 것 중에, bekrage의 자유 게시판이 담긴 table을 mysql db에 넣어 버렸다. table 중에 user라는 이름의 table이 있는데, 그것이 원래 mysql db의 user table을 덮어 버린 것이다. 당연 flush privileges했다간 심각한, 다양한 문제들이 주루륵...
이전에 있던 자료들 끄집어 내어서 간신히 수동으로 복구해서 넣었다. 진땀나는 순간이었다. 수동으로 복구하는데 걸린 시간이 거의 한 시간. "하하하, 이 맛에 서버 관리 한다니까." 라고 웃으며 넘겨버리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과감한 녀석이 못 된다. 하하
어쨌든 진행되고 있다. 곧 끝내야겠는데, 다른 할 일이 많다. 다른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자려는데, 코피가 난다. 젠장...

2004-05-18

손진훈 교수

  • 손진훈 교수
  • 대학원

집에 오기 전에 사물함에 책을 넣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오줌을 싸는데, 졸려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오른쪽에 누가 와서 섰는데, 눈 뜨기가 귀찮아서 그냥 있었다. 오줌을 누고 눈을 떴는데, 머리 한쪽 편이 보였다. 흰머리가 꽤 많았다. 손을 씻으며 있다가 보니 손진훈 교수였다. 인사를 했다. 짧은 대화를 몇 마디 했다.
흰머리가 많아졌다. 2000년에 자주 봤던 때, 흰머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것일까?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몇 학년인지 군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4학년, 군 미필, 학군단 그만둠... 언제까지나 이런 답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당당히 다른 대답을 해야지.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한번 새롭게 떠올랐다. 학군단을 했다면 학군단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것이고, 일찍 갔다가 복학했다면 지금쯤 대학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텐데. 시간에 대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외국의 대학도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특히 영국. 전부터 영국에 가고 싶었던 마음도 있고, 왠지 영국에 대한 마음이 있다.
지금은 알 수 없다. 지나고 나면 확실해 질 것이다.

2004-05-17

환각

  • 환각 - 피

토요일, 일요일 이틀간 집안에만 있었다. 귀찮은 탓에 머리를 감지 않았다. 낮에 밖에 나가려고 머리를 감는데, 기름진 머리에 물을 묻히고 머리카락 사이로 물이 스며들기를 잠시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뒤통수 부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약간 미끌미끌하고 끈적한, 기름진, 그리고 물이 스며든, 물이 스며들어 머리에 바짝 붙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느끼자니, 마치 머리에 피가 나서 머리카락에 흥건하게 맺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그랬다, 피처럼 뜨거운 느낌은 없었지만.
어릴 적 뒤통수 피부가 찢어져서 피가 났을 때에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피가 가진 점성(粘性) 때문에 피 묻은 손을 살짝 문질러 보면 미끌미끌하고 끈적끈적하다. 그리고 피가 뜨겁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몸에서 나는 피는 고작 섭씨 36.5도 내외일 것인데, 딱히 그 온도의 피는 대단히 뜨겁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피가 머리카락 사이에 스며들면, 머리를 움직일 때에 머리카락의 각 가닥의 끝에서 끝까지 느껴지는 아주 미묘한 느낌, 그 느낌에서 머리 전체가 감싸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빨리 감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무래도 그런 느낌을 받고 싶지 않다.

2004-05-16

심리학, Apple

  • 심리학 공부
  • Apple의 철학
  • Apple의 기술자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에서 갖고 있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물으면 단지 웃거나, 특별한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물론 꿈은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있다. 하지만 학부 졸업을 앞에 둔 지금 그 꿈은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바른 길이라는 것이 있을리 없고, 있다하더라도 지금은 알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꿈이라는 말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 나는 꿈이라는 말을 단지 잠을 자는 동안 꾸는 꿈이라는 의미로만 사용한다. 희망 또는 목적이라는 의미로 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 희망이라는 단어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의지도 포함하고 있지만, 막연히 바란다는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적이라는 단어만 사용한다. '오직 의지만이 있다'라는 생각 때문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만들어진 것에 나를 맞추어야 할 때처럼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싫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경우는 없다. 제멋대로 만들어진 의자에 나의 몸을 맞추어야하는 것도 싫고, 작업의 순서와는 전혀 관련 없이 만들어진 동선(動線)따위도 싫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의 GUI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산업 디자인 공부를 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더 기저에 있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학기에 인간 공학(공학 심리학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지만)을 배우고 있다. 수업에서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그리고 인간의 감각, 지각, 인지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배우는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수업을 좀 더 촘촘하게 나가면 좋겠는데.
그런 일을 하려면 좀 더 공부를 해야할텐데, 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겠다는 의지는 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Apple의 철학을, 그 철학이 담긴 제품을 - 다시 말해 매킨토시Macintosh를 - 접한 것에서 연유했다. Apple이 가진, 인간을 위한 도구라는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쉬운 컴퓨터가 필요했고, 마치 TV를 켜고 끄는 것처럼 하나의 가전 제품인 컴퓨터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장애인, 아이를 위한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인간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상징을 사용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꼭 Apple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Apple이 그 분야에 기여한 바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Apple의 기술자 중 내가 좋아하는 몇명. 그 중에서도 Jef Raskin.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든다. 장애인들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이 매킨토시의 곳곳에 보인다. IBM 호환 PC 시장에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부분을, 시장 점유율도 그리 높지 않았던/않은 Apple에서 꿋꿋이 장애인들을 위해 연구한 사람. 과연 Think Different라는 표어를 머리속에 담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를 포함하는 그 회사이다.
Apple이 GUI와 관련된 새로운 특허를 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발자의 이름에 Kim Silverman이 들어있었다. Kim Silverman, 심리학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어느 사이트에 나와있는 Kim Silverman의 정보를 보면, Monash 대학에서 정보 과학과 실험 심리학에 대해 각각 학사 학위를 받았고, Melbourne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 Cambridge 대학에서 음성 합성에 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크게 된 사람들이 지나온 길을 살펴보면,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 대단히 암담해 보인다.

2004-05-15

봄은 고양이로다

  • 봄은 고양이로다
  • 기억 - 고등학교, 문학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1924년)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요 며칠간 비가 오긴 했지만, 그런대로 봄 분위기가 났다. 이번 해는 폭설부터 시작해서 늦은 봄에, 늦은 비... 날씨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봄은 왔다.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내가 저 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잊었다고 하기 보다는, 나의 의식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까. 어쨌든, 지금 다시 저 시를 생각한다. '그래, 봄은 고양이다.' 털이 가볍고 부드러운, 그리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고양이를 보면, 보는 마음도 둥글둥글해 지는 것 같다. 봄 날씨에서 꽃가루, 매연, 황사를 빼면(다시 말해 예전의 조용했던 봄의 기억으로) 봄은 정말 좋다. 나른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고, 졸려서 낮잠을 자도 좋고, 따뜻한 바람을 느끼며 산에 올라도 좋다.

저 시를 처음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참 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때였다. 노력해서 시도 여럿 읽었고, 특히 근대 소설을 많이 읽었던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봄, 잔인한 사월을 처음 맞았던 때에 묘한 연(緣)이었을까, 저 시를 보게 되었다. 좀처럼 시를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시를 보면서 그 모습뿐만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촉각과 다른 복합적인 느낌을 충분히 느껴본 것은 아마 그 때였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아마도 거의 논설문만 읽었던 것 같다. 가끔 수필 정도. 그러다가 시도 읽게 되고, 소설도 읽게 되었다. 사실 양으로 보면 더 많이 읽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노력해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느끼려고 시도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그제서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그 때에 썼던 시, 소설들이 기억난다. 얼마 많이 쓰지 않았으니 더욱 그것들이 기억난다. 공책과 원고지가 어디 있을텐데, 나중에 여유로워지면 찾아봐야지. 시간이 많이 흘러서 다시 돌아보면 참 싱그러운 느낌이 들까?

2004-05-13

일상 - StaticGray, 서버 이전

  • X의 StaticGray visual
  • bekrage 서버 이전

며칠 전에 SlackWare 9.0을 설치했다. 그리고 XFree86-4.4.0을 설치했다.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그간 문제가 있던 8 bit StaticGray 디스플레이에서 gtk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 그 모습을 본 순간 '내가 뭔가 잘 못 실행시켰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mozilla-1.7rc1을 설치했는데, 이것도 StaticGray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간다. 정말 마음에 든다. mozilla 버그 리포트 여러번 했던 것 같은데, 그간 잘 해결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아마도 XFree86의 변화로 인해 해결 된 것 같다. mozilla의 변화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XFree86이 그간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XFree86이 아닌, 다른 X에서도 8 bit StaticGray 또는 GrayScale에서 mozilla는 언제나 이상하게 보였다. 아마도 이전의 XFree86이 정상적으로 되어있었는데, 이번에 어떤 변화로 인해서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제와 관련된 것이 바뀐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8 bit StaticGray는 여전히 gtk와 문제가 있다.

이은진님에게서 편지가 왔다. 서버 주소와 계정, root 패스워드. 편지 받자마자 새 서버에 접속해서 이것 저것 둘러보았다. mail 서비스에 문제가 조금 있었다. 고쳐보려고 이것 저것 찾아보고 시도 했는데 성공하진 못했다. 시간 내어서 수정해 봐야겠다.
며칠 내로 mail 서비스 정상화하고, 사용자 이전하고, 웹 서비스도 이전해야겠다. 그리고 나면 domain name 서비스도 이전해야지.
논문도 쓰고, 기말 과제도 해야하는데. 아싸, 좋구나. 일이 겹쳤네.

2004-05-12

일상 - 산책

  • 산책
  • 실행

비가 온다, 산에 가려고 했는데. 나가지 말고 집에 있을까 했는데, 정오 즈음해서 비가 조금 내릴 때에 우산을 들고 밖에 나갔다. 산에는 못 가고 석교동 쪽으로 산책을 갔다. 산과 가깝고, 또 길 주변으로 밭이 조금 있어서, 그리고 풀이 조금 있어서 마치 시골의 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오니 풀 냄새가 길에 퍼졌다. 길 어디를 가도 풀 냄새가 났다. 정말 오랜만에 맡아 보는 것이었다.

불안을 느낀다, 기억들에서, 앞으로 할 일에서. 이 불안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다. 그럼 하지 말자. 불평만 계속 하지 말자. 나도 무언가 하고 싶다. 실행이 필요하다.

2004-05-09

기억 - 태권도 학원

  • 고맙다는 인사
  • '다'와 '마'
  • 학원 버스
  • 옷 갈아입기
  • 발 차기
  • 플래쉬
  • 뜀틀 넘기
  • 그림 그리기

어릴 적 태권도 학원에 다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7살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태권도 학원에서 온 사람이 우리 집에 방문했던 것이 기억 난다. 그리고 태권도 학원에 오라고 설득을 한 것 같고,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500원을 주었던 것이 기억 난다. 그 때 이상했던 것은, 돈을 내 손에 건네 주기 전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라고 그랬던 것. 내 생각으론 돈을 받고 난 뒤에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 같은데. 그 때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돈을 나한테 내밀었다가 다시 가져가기를 몇 번 했다.

그 학원은 유치부에서 유치원과 같은 기능도 했다. 산수, 한글, 노래 같은 것을 배웠다. 여자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한글 쓰는 것을 지도했다. 칸이 큰 공책에 한글을 한자씩 써주면 그것을 10번씩 쓰고 다음 글자를 쓰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지금도 그런 공책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가로로 칸이 10개씩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쓰는 공책. '마'를 써 오라고 줄의 첫 칸에 색연필로 적어 줬는데, 그것이 '마'인지 '다'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ㅁ'과 'ㅏ'가 서로 닿아서 '다'처럼 보였다. '다'를 9번 써서 갖고 가니 선생님이 왜 '다'를 써왔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 기억은 전에 적은 바 있는, 아버지가 머리를 말려 주었던 날의 기억이다. 태권도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비가 왔다. 우산을 갖고 가지 않아서 그냥 비를 맞고 가려고 태권도 학원을 나섰다. 그 때 우리집은 효동. 문창 시장에서 대전천 쪽의 블록이었는데, 내 바로 옆으로 학원 버스가 왔다. 여자 선생님이 타라고 했는데 안 탔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 안에 다른 학원생들이 많아서 타기가 불편했었나 보다.

학원 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고 있는데, 학원생 중에 다른 원생들보다 어린(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몸집도 작고 척 보기에 그랬다.) 원생의 집 근처에 이르렀다. 그 원생이 탔는데, 이 녀석이 똥을 쌌다. 그래서 조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태권도 학원에 간 날인 것 같다. 태권도복을 받고 곧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헌데, 어머니와 함께 갔는데, 태권도복을 갈아 입을 곳이 없었다. 속에 내복도 입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옷을 벗기고 도복을 입혔다.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옷 갈아 입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복도 그랬고.

충효 체육관. 문창 초등학교 맞은 편 건물, 우리 문구의 위층에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조금 길고, 서쪽으로 창문이 많이 있었다. 그다지 밝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저녁 때인 것 같다. 원생들에게 발차기 연습을 시키고 있었는데, 원장이 그것(발차기 연습할 때에 표적으로 사용하는, 손에 들 수 있는, 조금 넓쩍한 것)을 나의 머리 위로 수평으로 놓았다. 나는 그것을 발 뒷꿈치로 찍으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힘껏 다리를 올려 내려 찍었다. 정확히 맞았는지 소리가 따악하고 났는데, 이어서 원장이 잘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서 옆으로 돌아 줄의 뒤로 서면서 봤더니 다른 원생들은 발 끝을 살짝 대고 있었다. '괜히 나만 별나게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부 졸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단체 사진을 찍는데, 플래쉬가 두려웠다. 플래쉬를 보면 항상 재채기가 나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플래쉬가 터졌는데, 재채기는 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얼굴이 엉망으로 나왔다.

원생들이 놀이를 하도록 여자 선생님이 지도를 했다. 몇 명이 허리를 숙여 뜀틀이 되고, 둘로 나뉘어진 팀에서 한명씩 나와 빨리 뜀틀을 넘어 돌아오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였다. 우리 팀에 이종원이 있었는데, 역시 이종원에게 우리 팀의 선수를 뽑게 했다. 하고 싶다고 난리를 치는 녀석도 있었고, 다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녀석들이었다. 가만히 있던 내가 선수로 뽑혔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게 되었는데, 뜀틀이 된 녀석들이 너무 커서 뛰어 넘다가 넘어졌다. 규칙을 지켜서 오히려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선택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부터는 그런 것을 하고 싶지 않을 때에 규칙을 어기고 자세를 좋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닭과 병아리를 그리라고 했는데, 나는 시간이 꽤 많이 흐를 때까지 거의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 상당히 신중하게 하려고 했고, 닭과 병아리의 모양을 도화지에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대충 그려버릴까 했는데, 그래도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다른 원생들은 거의 다 그려 가는데, 나는 고작 선 몇 개를 그린 정도였다. 그 때 많이 긴장했었고, 그림 그리는 것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끝날 때까지 그림 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4-05-06

일상 - 만남

  • 만남
  • 정서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히 보고 있자니 변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러가지. 외모는 그간 두 해 동안 별로 바뀌지 않았지만, 그 외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오랜만의 자리였다. 함께 저녁 식사하고 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이제는 익숙해졌나 보다. 나도 이런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내가 1학년 때엔, 이런 자리에 있다가 돌아오면 아쉬움, 후회의 감정들이 주로 남아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간 이런 자리를 여러 번 갖게 되면서, 그런 경험을 통해 이것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즐거웠다.

그 친구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과연 올까?’하는 생각을 했다. 약속 한번 하기 어려운 친구, 얼굴 값 비싼 친구, 그리고 그래서 나에게 아쉬움을 많이 주었던 친구였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잘 살기를 바란다.

미군의 만행

  • 미군의 만행
  • 분노
  • 책임

미군이 이라크에서 하는 짓에 대한 영상물을 보았다.

퀵타임 라이브 방송 공작단에서 링크

충격적이었다. 화가 났다.

누구의 문제일까? 미군의 모든 군인들이 다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미국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미군이라는 집단의 문제일 가능성은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집단의 영향으로 군인 개인들이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번째 책임은 미군이라는 조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의 구성 요소이고, 실제 행위를 한 군인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미국 정부.
시간이 나면 더 생각해 봐야겠다.

미선이와 효순이를 장갑차로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 미군은 그것에 대한 적절한 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번 사건에 보이는 미군의 행위는, 그리고 그것에 대한 태도는 미선이, 효순이의 사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다지 신중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미군 그리고 미국이 다른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군, 미국 스스로 자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금연 충고

  • 이분법적 사고: 담배를 피운다/피우지 않는다
  • 이분법적 사고: 성공/실패
  • 금단 현상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에 대해서 직접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언론 매체를 통해, 문서를 통해 얻은 지식들이 있으며, 특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서 얻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지적인 왜곡이나 잘못된 신념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담배를 줄이려는, 또는 끊으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다.
우선 담배를 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으려고 하지 말고 줄이려고 하라고 충고 하고 싶다. 담배를 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단점이 있다. 그리고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전무(全無)에 이르는 것은 전무에 가깝게 줄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에 100 점 맞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90 점을 맞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면 왜 끊으려고 할까? 아마도 가장 흔한 답은 건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대인 관계나 그 외의,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될 때의 이익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익을 위해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면, 담배를 한두 개피 피우는 것과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것과 그런 이익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다가 담배 한 개피 피우는 것은 길에서 매연을 조금 더 마시게 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운다/피우지 않는다”의 이분법적인 생각을 버리는 것이 첫번째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담배를 끊어야겠다, 줄여야겠다고 마음 먹고, 시간이 지나서 어쩌다 한 개피 피우게 되었을 때,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담배를 끊는다, 줄인다는 것은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을 때에 오는 이익 때문이다. 그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써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피우는 담배의 수가 줄어드는 것에서부터 그런 이익은 발생하는 것이다. ‘이미 한 개피 피웠으니 실패다, 그러니 금연 운동 그만두고 다시 피우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금연 성공/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금단 현상을 있는 그대로 견디는 것이 좋다. 담배를 안 피우면 허전해서 군것질을 하거나, 다른 입을 자극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군것질과 같은 담배를 대신해 입을 자극하는 것들을 사용하면, 금연의 이로움을 얻게 될지언정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오게 된다. 담배를 끊어도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니 문제의 연속이다. 가능하면 금단 현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저항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 담배로 얻은 즐거움에 대한 응보로 얻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왠지 불교적인 냄새가 난다.)

2004-05-05

어린이 날 - 2004

  • 어린이 날의 시작과 의미
  • 현재의 어린이
  • 어린이에 대한 나의 관점

현재에 어린이날은 왜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충남대 신문에 독자 투고로 보냈다. 받아줄 지는 잘 모르겠다. 급조한 것이라 내용이 조금 엉성하기는 한데.

어린이 날은 방정환이 어린이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또, 어린이에게 국권회복에 대한 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방정환은 아동 미술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고, 일찍부터 진취적인 생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이다.
어린이 날 행사는 1927년에 처음 했다. 그 당시에는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어린이는 성인과 다르지 않은, 단지 작은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그 때에는 그 연령 대에 교육을 받아야 하고, 보호 되어야 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어린이에 대해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지 않았다. 어린이의 발달에 그러한 것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때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다음 세대가 될 어린이들에게 국권회복에 대해 기대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어린이의 인권은, 다음 세대가 될 어린이들에게 심어주어야 할 우리 사회의 가치는 어떠한가?
아동기가 개인의 삶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인권의 보호에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다. 어린이 자신의 요구보다는 어머니의 요구로 자라고 있고, 부지부식 간에 유기, 방치 되고 있는 어린이도 보인다.
일제의 지배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일제 시대에서 이어져온 감정, 명예, 미해결된 실리적 문제들이 아직 남아있다. 또, 여전히 다른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는 아직도 힘들다.

동네 어린이 하나를 자주 보는데, 저녁 먹고 집에 나설 때 들고 가는 학원 가방과 밤이 되어 들어올 때의 가방이 다르다. 어린이 날을 맞아 가족들과 동물원으로 놀러 간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이 날 하루 가족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부디 훌륭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에겐 아직 먼 얘기지만, 내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나 둘 정리해본다.

초기 기억

  • 이름
  • 자장밥

초기 기억 몇 개를 적어볼까 한다.

아마 5살 때 정도. 안씨 할머니 댁에서 살 때에, 그 근처의 교회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유치원 비슷하게 어린이들을 모아서 함께 놀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젊은 여자 선생님이 있었는데, 출석을 불렀다. 나는 선생님 바로 옆에 있었는데, 출석부가 내 앞에 보였다. 선생님이 앉아 있었고, 무릎 위에 출석부가 있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대답했다. 동시에 선생님이 어느 칸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는 그 동그라미가 내 이름을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집에 와서 엄마, 형, 누나 앞에서 내 이름을 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곤 종이와 연필로 이름이라고 생각한 것을 그렸다. 헌데, 누나가 아니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이 그린 것과 조금 달랐다. 선생님이 동그라미를 빨리 그리느라 오른쪽이 터져 있었는데, 나는 동그라미를 완전하게 그린 것이다. 나는, 누나가 나에게 틀렸다고 하는 것이, 정말 그것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출석부라는 것에 이름이 기록되어있고, 그 동그라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기억에서는 특별히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내가 안다는 것에 대해 그것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아마 5살 때 정도. 안씨 할머니 댁에서 살 때에, 그 근처의 교회에서 음식을 나누어 준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나 그런 때였던 것 같다. 형과 누나가 그곳에서 자장밥을 먹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를 빼고 둘만 먹었다는 것에 서운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때의 정서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아무튼 늦게 가서 자장밥을 얻어먹었다. 식당인지, 강당을 임시로 식당으로 쓴 것인지, 어쨌든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깜깜했던 장면이 기억 난다.
이 기억에서는 형과 누나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형과 누나에 대한 열등이 있을 것 같다.

2004-05-04

일상 - 미루기

하고 싶은 일들을 내일로 미룸

  • 어린이날에 대한 글쓰기
  • 수필 쓰기
  • 블로그에 음악 스트리밍

하고 싶은 일이 몇가지 있는데, 내일 하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준비를 좀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별로 불안하지 않다. 준비를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서 버스 안에서 내내 어린이날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린이날과 관련된 무비판... 매너리즘
수필을 한편 쓸까한다. 가능하면 좀 참신한 생각이 담긴 것으로. 우선 참신한 생각을 해야겠지? 근래에 불교에서 가져온 것을 써보면 어떨까? 존재, 실체, 실재, 운동...

개인 서버 사용자의 필연이라고 할까? 모든 것을 손수 작업해야하는 귀찮음이 있다. 물론 그 덕에 공부도 많이 하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처럼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만들어 볼까 하고 이것 저것 손을 대어 보았다. 우선 SMIL 파일에 MP3 파일들의 리스트를 넣어서 웹 페이지에 내장할까 했는데, 어떤 플레이어로 돌아가도록 할지 결정 못했다. QuickTime 또는 RealPlayer.
QuickTime에서의 사소한 문제를 하나 발견했다. 만들어낸 SMIL 파일이 audio 항목을 552개 가지고 있고, 크기는 64KB 정도 된다. QuickTime이 이 파일을 열면 심하게 느려진다. 특히나 웹에 내장될 경우, 거의 웹 브라우져가 죽은 듯이 보인다. 반응이 대단히 느리다. 반면에 RealPlayer는 그다지 느려지지 않는다.
일단 ASX 형식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MS Media Player로 열어봤는데, 상당히 만족스럽다. 일단은 이 형식으로 해볼까? http://macspace.cnu.ac.kr/~imyaman/tmp/ktmusic.asx
가능하면 시간을 좀 더 내어서 웹 브라우저로부터 정보를 얻어내어 가장 좋은 방식으로 선택되도록 하거나 사용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어차피 SMIL이나 ASX나 포맷은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까.

2004-05-03

일상 - 비, 정서, 논문

  • 비: 정서, 술, 노래
  • 논문 쓰기: 참고 논문 읽기, 책 읽기

아무래도 그렇게 길러진 것일까? 비를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하얀 하늘을 보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맑은 날 화사한 햇빛에선 무언가 강한 느낌을 갖는다. 상쾌함, 즐거움을 주기는 하지만, 편안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비를 보면 머리 속에서 천천히 순서대로 말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천천히 형성된 일종의 연계 체계라고 할까. 비를 보는 순간, 편안함, 느긋함, 끈적함, 안정감 그런 것을 한꺼번에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술. 냉장고에 있는 캔 맥주 두 박스, 손을 좀 대볼까 했는데, 막상 꺼내려고 하니 내키지 않았다. 아무래도 맥주는 내 취향이 아닌가. 막걸리나 청주를 좀 마실까 생각했는데, 막상 나가려고 보니 흥이 안 났다. 또, 뭐 다른 먹을 거리가 없어서. 몇잔 마시지도 않을 것이고 해서, 참았다.
딱히 정해 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마냥 하는 그런 것이 정해진 것 같다. 10월에는 Barry Manilow의 “When October goes”를 듣고, 비가 오면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듣는다. 가끔 친구 생각이 나면 조용필의 “친구여”. 오늘도 비가 오는 날이다. 역시나 “비처럼 음악처럼” 들었다. 컴퓨터를 켜고, 초필살 무한 반복. 음악을 들으니, 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좀 가셨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오고 있었다. 축축함, 흐림. 수업이 없어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생각하니 비 안 맞게 되어서 오히려 즐겁기도 하고, 괜히 나가고 싶기도 하고 그랬다. 14:00 정도 되어서 산에 갈까 했는데, 비가 마음에 걸렸다. 평소 가는 길 말고, 포장된 길로 가서 보문산 전망대 바로 밑에 있는 음식점에서 막걸리와 부침개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에 burnhard, Susanne과 함께 갔을 때, 막걸리 맛이 정말 좋았던 터라, 기억하고 있었다. 나가려고 우산을 들고 문을 열었는데, 왜 그랬을까? 나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그래, 비 오는 날에는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
결국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지난 금요일, 어제 시험을 보았으니, 이제 논문에 신경을 써 볼까 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논문 개요를 적당히 쓰고, 서론을 쓰기 시작했다. 전부터 서론은 이렇게 써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어서 쓸 내용은 걱정이 없는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 지 망설였다. ‘뭐 일단 쓰고 나중에 조금 고치지’하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논문에서는 어떻게 시작을 했는지 참고하려고 이것 저것 뒤져 봤는데, 내용이 다르니 표현도 조금 다른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것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우선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글 쓰기를 그만 두었다. 책 얼른 읽고 내용을 풍성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책도 별로 못 읽었다.
사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그리고 어제 시험을 봤으니 좀 여유를 부려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었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이렇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노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오늘의 상황이라면, 마치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의자에 힘 없이 푹 쳐져서 시간이나 보내면서 쉬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인가? 쳇.

2004-05-02

정보처리 기사 실기

  • 정보처리 기사 실기 시험
  • 난이도, 검사 내용

정보처리 기사 실기 시험을 보았다. 그간 시험 준비 안 하다가, 어제 하루 준비하고 시험 봤다. 시험 보기 전에 조금 긴장했는데, 막상 시험을 접하니 문제가 쉬워서 편하게 풀었다. 문제가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시험을 본 경험이 있어서 일까? 이번에는 생각보다 쉽게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 필기와 실기 모두. 정보처리 산업기사 시험 볼 때에는 필기는 한달, 실기도 일주일 정도 공부한 것 같다. 이번에는 필기는 삼일, 실기는 하루. 삶에 있어서 미덕 중 하나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 보면서 준비 안한 다른 수험자들을 보았다. 보기가 조금 측은했다. 나도 처음 시험을 봤을 때에는 저랬지... 하고 생각하며 다른 수험자들도 시험 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험 시작한지 한 40분? 천천히 코드 돌아보면서 만들었는데도 그 정도 밖에 안 걸렸다. 나보다 일찍 나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C언어로 시험 본 사람 중엔. 후후 승리의 V를...

실험 심리학, 심리 측정 등에서 배운 바로, 좋은 검사는 타당도와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고 배웠다. 정보처리 시험은 그다지 좋은 검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실기 시험에서 신뢰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컴퓨터가 문제를 일으켜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수험자의 능력 외의 요인들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타당도도 문제가 되는데, 시험 문제가 항상 같은 유형이라 기출 문제 몇 번 풀어보고 외우면, 쉽게 통과할 수 있다. 또 시험의 내용이 정보처리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고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내용 타당성이 약하다.
하지만 이전에 계속 그렇게 해왔으니 갑자기 시험을 바꾼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또, 이전의 컴퓨팅 환경과 지금의 컴퓨팅 환경의 차이가 큰데, 단순히 일괄처리의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본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지금에 와서는 컴퓨터의 속도가 많이 발전하여, 텍스트에서 자료 뽑아서 일괄처리 하는 것 정도라면 perl 같은 것으로 간단히 만들어서 쓰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시험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어려울 테니, 지금의 시험을 없애고 새로운 시험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방법도 이 자격 시험과 관련된 체계의 다른 부분들을 바꿔야 하는 문제점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