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9-25

극복(克服), 행동주의(Behavioral approach)적인 고려

  • 행동주의(Behavioral approach)적인 고려
  • 문제 제기: 슬픔에 대한 대처
  • 현재 상황: 슬픔과 연합
  • 대안: 슬픔과의 연합을 소거
  • 구체적 방안

행동주의(Behavioral approach)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쓰고 보니, 내가 완강한 행동주의자(Behavioral psychologist) 같다. 단지 심리학적으로, 특히 행동주의적으로 해결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 지 생각해봤다.

잠시 뒤를 돌아보려한다.

좋아하게 되고, 멀리 있게 되면서 슬픔과 외로움 그런 것을 자주,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한달이나 지났고, 이제는 그것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한다.

현재의 상황.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빼고 나쁜 것은 없다. 그리고 좋아함을 믿고, 좋아할 수 있고, 만날 것을 희망한다. 단지 힘 든 것은 만날 수 없다는 것,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상대에 대한 염려. 또, 슬픈 것은 기쁨을 알게 된 이후에 느끼는 삶에 대한 서러움.
하지만 현실, 현재는 이것보다 더 즐거울 수 있다. 이런 슬픔, 외로움은 내가 자꾸 끄집어 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함을 믿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은총인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이 상황에 대한 대안을 몇개 찾아보려한다.
A를 생각하면 자주 목이 메인다. 이 문제는 고전적 조건형성(traditional conditioning approach)로 설명할 수 있다. 점점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멀리 가게 되었을 때의 슬픔이 A라는 대상과 연합되어 자주 출현하였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슬픔과 A가 강하게 연합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는 A가 슬픔을 이끌어낸다.

좋아함(그 과정), 멀리 감 (unconditioned stimulus) -> 슬픔(unconditioned response)
A(neutral stimuli) + 좋아함, 멀리감(unconditioned stimulus) -> 슬픔(unconditioned response)
A(conditioned stimuli) -> 슬픔(conditioned response)

이런 연합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른바 소거(消去)를 해야한다. 그리고 새로운 연합을 만들 필요가 있다.
중립적인 감정상태에서 A를 자주 떠올린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여 중립적인 감정과 A를 연합시키거나 A와 다른 감정의 연합을 약하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좋은 감정과 A를 연합시킨다.

좋아함(믿음), 의지(依支) (unconditioned stimulus) -> 기쁨(unconditioned response)
A(neutral stimuli) + 좋아함, 의지(unconditioned stimulus) -> 기쁨(unconditioned response)
A(conditioned stimuli) -> 기쁨(conditioned response)

구체적인 방법으로, 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기분에서 A를 생각한다. 그리고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슬픔이 이어서 나타나지 않도록, 기쁨만 느끼도록 통제를 한다. 예를 들면 기쁜 상태에서 다른 일로 전환하는 것 같은. 혹은 쉬는 시간에 할 수도 있고, 재미있는 그림을 보거나 귀여운 동물 사진 같을 보면서 하는 것도 좋겠다.

자조(自助)

  • 자조(自助), 스스로 도움

그래 내가 필요한게 이런 것인가보다.
imgood.jpg

알 수 없어요, 한용운

  • 알 수 없어요, 한용운
  • 감상(感想)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깁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네 생각이 난다. 마치 네가 길을 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듯.
하늘을 보면, 푸른 공백에 너의 얼굴이 스민다. 언제나 나를 지켜 보듯이.
바람 불어, 은은한 향기를 맡으면 너의 향기가 느껴진다. 너를 안을 때처럼.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너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낭랑한 목소리.
저녁 노을은 마치 천사가 팔을 벌리고 바다 저끝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천사가 미치는 곳은 모두 붉게 변한다. 저 붉음은 너의 말과 같구나, 사랑한다는.
나의 서글픔은 마음을 화르르 태우고 다시 기다림으로 바뀐다. 나의 이런 간절한, 애타는 마음은 너를 걱정하는구나.

2004-09-24

포옹, 안음.

  • 안다, 포옹에 관한 책
  • 여성, 이상형
  • 첫번째, 안아줌
  • 두번째, 안아줌
  • 안음의 의미, 불능(不能)
  • 慾(욕. 바람, 욕구, 욕심): 안기고 싶음

안다, 포옹에 관한 책을 찾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여자에 대한 이상형을 물었을 때, 딱히 그런 것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전에 누가 그런 질문을 해서 답하기를, "나를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음, 팔하고 몸통이 있으면 되겠다." 그리고 몸통과 팔만 있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조금 무섭다는 얘기를 하며 웃었다.

그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또 기억났다. 처음 만난 날, 대전역에서 헤어지기 전에 날 안아주었던 것, 그리고 그 느낌. 그 경험이,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안겨본 것이었다. 정말 특별한 경험, 느낌이었다.
오른손을 내밀어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나를 안을 줄은 몰랐다. 오른팔을 들어 나의 목 뒤로 넘길 때, 나도 모르게 오른팔을 들어 등뒤로 넘겼다. 가볍게... 은은히 느껴지는 체온, 그리고 따뜻한 느낌. 그리고 인사를 하고 보냈다.
2004-08-14 19:58. 그 차가 떠나고 좀 지나서까지 역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간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고, 안아주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즐거워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2004-08-19 20:40 즈음. 서울역에서 날 안아주었던 것, 그게 바로 두번째. "꼭 안아도 돼?"라고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아직 안는다는 것, 안긴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렴 어떠냐. 어쩔 수 없이, 삶에 대해서는 낯선 것 아니겠는가.

A와의 포옹에서, 감히 안음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 나라는 존재가 타인을 안을 수 있음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타인이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안기었다. A가 나를 안아주었다. A에게 안기었다.
그리고 아마 나도 안았나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지금 느끼는 것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에.

안는다는 것, 그것의 느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풍성하고 다양한 느낌이라는 것, 그리고 좋은 느낌이라는 것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안는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느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진정 소중하다는 것이다.

안기고 싶다. 안고 싶다. 따뜻하게... 안기리라, 안으리라.

John Lennon

간혹, John Lennon을 언제까지나 Beatles로 보는 경우를 접한다. 하지만 John Lennon은 Betales와 따로 떼어 놓고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John Lennon은 Plastic Ono Band와 붙여 놓고 생각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John Lennon은 Beatles 이후, 새로운 독자적인 진정 창조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달라졌고, 그래서 구분되기 때문이다.

Beatles의 노래를 들어보면 여전히 좋지만, 부족한 것이 있다. 여전히 사랑타령이 좀 많다는 것이다.
이후 John Lennon의 노래를 보면, Imagine, I Don't Want To Be A Soldier(I don't wanna die), Give Me Some Truth(I've had enough of reading things by neurotic, psychotic, pig-headed politicians, all I want is the truth now) 이런 식으로, 제목만 봐도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Beatles 이후, 그리고 아마 Yoko Ono의 영향도 받았고, 진정 인류애(人類愛, love for humanity, 인간중심, 인본주의라는 말 보다는 인류애)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인류애를 갖게 됨으로써 그의 노래는 정치적, 반전(反戰)일 필요가 있게 된다.

Julian Lennon이 - John Lennon의 아들, 바로 Hey, Jude.가 들리어졌던 - 한 말이 기억난다. 그는 John Lennon이 Beatles 이후 새로운 길을 갔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Imagine은 Bealtes, 그 안의 John Lennon이라기 보다는 Beatles 이후의 John Lennon의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Hey, Jude.를 듣고 싶다. 나에게 들려주고 싶다.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Hey Jude
Don't be afraid
You were made to go out and get her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Then you begin to make it better

And anytime you feel the pain
Hey Jude, refrain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s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
By making his world a little colder

Hey Jude
Don't let me down
You have found her, now go and get her
Remember to let get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So let it out and let it in
Hey Jude begin
You're waiting for someone to perform with
And don't you know that it's just you
Hey Jude, you'll do
The movement you need is on your shoulder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under your skin
Then you can begin to make it better

희망가

희망가. 작사: 김종서, 작곡: 김종서, 노래: 김종서.

매일 매일 똑같이 지나가는 세상에
너만이 나에게 산소같은 힘인걸

종일 걷기만 해도 한번봤던 영화도
내겐 행복이야 함께 있다면

가끔은 시인처럼 때로는 아이처럼
조금씩 내가 아닌 날 만드는 너

똑같은 하늘아래 수많은 사람중에
너만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

길을 걷다 가끔씩 놀라운걸 알게 돼
세상 온통 너와 닮은 사람뿐

얼만큼 내안에 있는지
너는 가끔씩 묻곤 하지

니가 없는 이 세상엔 아마 나 없을꺼야

KimgJongSeo_Love_Song_-_09.SongOfHope.mp3

삶을 향해

삶을 향해, 작사: 정형진, 작곡: 김종서, 노래: 심혜진. 영화 "세상 밖으로" 삽입곡, 혜진의 테마

항상 두렵게만 다가오는 이 세상에서 정해진
그 길만을 따라가도록 난 길들여졌지
마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내 삶을 향해
언제나 그러하듯 침묵속에서 난 길들여졌지만
얼어붙은 가슴에 언제부턴가 따스한 손길이
나 이제는 세상을 위해 한송이 꽃을 피울 수 있어
아침에 혼자서 눈을 떠도 난 두렵지 않아
새로운 희망들이 내 마음속에 숨쉬고 있어

외롭지 않다. 오늘도 눈을 떠 밝은 햇살을 맞는다. 얼마나 큰 은총인가.

KimgJongSeo_Love_Song_-_06.ForLiving.MP3

2004-09-23

마음 먹기

  • 여전히 아픔
  • 응원
  • 우울
  • 건강한 해결 방안
  • 마음 먹기
  • 할 수 있다, 자신에게 하는 말

어제부터 정말 힘 내기로 했는데, 그리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여전히 마음이 이상하다. 아프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쓰린 것 같기도 하고, 가슴 근처에서 고통스러운 것이 계속 느껴진다. 문득문득 목이 메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힘 내야하는데. 어떻게든 추스려야하는데. 그리고 해야하는데.

A, 힘 들면 A도 힘들 것 같다. 응원해주려고 전화해서, 일부러 목소리도 높여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배터리가 없어서 중간에 끊어졌지만. 아무튼 어떻게든 모두 힘을 내고 잘 견뎌야할텐데. 그리고 할일도 성공적으로, 즐기면서 해야할텐데.

사실 우울하다, 많이. 운동도 더 많이 하고 햇볕도 더 많이 쬐고 사람들한테 연락도 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안 되겠다, 문득문득 목이 메인다.
몸은 다그쳐서 움직이고 있는데, 뭔가 감정은 그게 아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관리해야한다. 그리고 나아져야한다. 나아지고 싶다. 좀 더 정신적을,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싶다.
바람직한 해결방안은 뭘까?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진다던지, 갑자기 모두 제쳐두고 미국으로 떠난다던지, 현실에서 도피한다던지... 그런 파괴적인 방법 말고,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좋은 방안이 필요하다.

유식(唯識)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 졌다.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갖자. 그리고 낙관적으로 생각하자. 너무 힘 들면, 조금 먼 미래를 보자. 평화로운 곳에서 단 한사람을 옆에 두고 조용히 쉬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자. 가까운 미래가 부담되면 현재를 보자. 현재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을 즐겨보자, 천천히. 마치 처음 술을 마실 때처럼. 그 때의, 바로 그 처음의 그 마음처럼. 쓴 맛이 입안을 휘돌고 조금씩 취해가며, 여유로워지는 그 느낌을 생각해보자. 해야 할 일, 힘든 일들을 천천히 하나씩 진행해보자. 그러면 곧 그 일들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찾으리라.
도서관에서 돌아오면서 하늘을 봤다. '그래, 우리 가끔 하늘을 보자.' 어떤 책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늘은 언제나 높다. 내 마음이 아무리 저조해도, 하늘은 높다. 내가 어디에 가더라도 하늘은 있다, 그리고 보인다.
하늘은 언제나 있다, 내 곁에. 마치 단 한사람처럼.

심리학을 공부하며 배운 기법들을 사용해봤다. self-talk를 바꿔봤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바꿔봤다. 그리고 밖으로 소리내어 봤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갑자기 힘을 내고 싶었다. 거울을 봤다. 내 얼굴을 봤다. 내 왼쪽 눈을 봤다. 그리고 외쳤다. 자신있게 소리쳤다. 당당하게 들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노력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이룰 수 있다. 나는 진정 원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기다린다. 그리고 만난다.
그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그리고 위안이 되었다. 나를 믿는 이가 있겠지. 그리고 말은 안 하더라도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겠지. 아마 그 목소리가 들린 것이겠지.

2004-09-22

사랑은 끝없는 기다림, 최정숙

오늘도 기다린다. 기쁨을 간직하고.
만약 헤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살까. 허무해서 못 살 것 같다.
이렇게 된지 고작 두어달... 그 전에도 살아있었겠지만, 지금에와서 이 기쁨을 느끼고 나서, 다시 어두웠던 그 느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섭기만하다.
모두 버리고, 단 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끝없는 기다림

최정숙

새벽이 올때까지
흔적없는 당신의 그림자
슬픈 기다림은
어느 순간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텅빈
공간으로 돌아와
가슴 시린
몸부림으로
눈물만 조용히 닦아낸다.

그대 보고픈 마음 하나로
처절한 고통과 싸워야 하는
이 지겨운 싸움은
어느때 쯤에나 가서야
끝이 날련지.....

당신을 사랑하는
이 작은 가슴은
오늘도
채울수 없는 욕심으로

기다림 속에서
눈물만 뿌린다.
사랑이란
끝없는 기다림

그리고 아픈 싸움이다

힘을 낸다

  • 그 동안
  • 오늘, 힘을 내는
  • 의지(意志)로 끝까지
  • 나의 다짐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강산에

그러니까 8월 초부터다.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거의 제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러다가 14일이 되어 크게 전환(轉換)이 있었고, 그 후로는 정말 즐거움에 허우적거리다 23일이 지나고 점점 침체되어 간 것 같다. 어느덧 9월 22일. 벌써 한달이 지난 것이다. 그리고 두달을 보낸 것이다.

힘을 낸다. 힘을 낼 수 있다. 힘을 내고 싶다. 힘을 내야한다. 그리고 힘을 낸다. 학사 사관 지원서를 받아 왔다. 첨부할 증명서도 여러개 받아 왔다. 힘을 내자. 해야할 일이 있지 않은가!

아침 동안 열심히 작업을 했다. 오후엔 학교에 다녀왔다. 사람들도 보고 기분을 고조(高潮)시키며 목소리도 높이며 농담도 하고, 기분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래, 힘이 난다. 원래는 쾌활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에 의존도 많이하고 사람들과 있으면 정말 즐겁다. 그간 지나치게 저조(低潮)했다.
집에 와서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들었다. 그리고 따라 불렀다. 힘이 난다. 소리를 질러 봤다. 몸을 이리 저리 움직여 봤다. 발버둥을 쳐 봤다. 나는 살아있다.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만약 90세까지 산다고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은 고작 24년, 살아야 할 시간은 66년. 걷고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쉴 수 있는 곳에 이르겠지. 그리고 어느 새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겠지. 그러면서 평온함을 느끼겠지.
66년, 그렇게 멀리까지 볼 것도 없지, 앞으로 4년, 그 안에 무엇인가 이루리라. 그리고 함께 있을 수 있으리라. 준비하겠다. 그리고 함께 있겠다.
어떤 이는 신에 의지하며 산다, 어떤 이는 자신에 의지하며 산다, 어떤 이는 가족, 친구에 의지하며 산다, 어떤 이는 학문에 의지하여 산다, 어떤 이는 제도에 의지하여 산다. 그리고 어떤 이는 단 한 사람에게 의지하며 산다. 그리고 나는 의지한다. 신을 믿지 않지만, 신에 의지하며, 자신에 의지하며, 자신의 감정과 의지(意志)에 의지(依支)하며, 가족의 보살핌에 의지하며, 친구의 도움에 의지하며, 학문과 신념에 의지하며, 제도의 보호에 의지한다.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나를 추스린다. 나는 해내리라. 그리고 평안을 얻으리라, 나의 의지(意志)로, 그리고 나의 감정(感情)에서.

이 말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해보는구나. 그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꺼내보지 않았구나.
세상엔 쉬운 일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세상엔 어려운 일도 없다. 하면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실행뿐이다. 해서 안 되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다만, 한다. 그리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강산에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 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 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길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 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해진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수 있겠지

여러 갈래길중 만약에 이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 일지라도
포기할순 없는거야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 가야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보면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어느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2004-09-21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말을 한다고 사라지지도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Mozilla에서 rss feeding

RSS feed를 사요하고 싶은데, NetScape 7.2에는 적당한 plugin이 없다. 이럴 때에는 Mozilla Sidebar를 대충 사용하면 좀 낫다. http://www.theonering.net/staff/corvar/cgi-bin/sidebar-inst.pl에서 RSS 주소를 넣어주면 된다. 다만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한글이 깨진다.

예:
http://www.theonering.net/staff/corvar/cgi-bin/sidebar-inst.pl?url=http://imyaman.bekrage.net/blog/index.rdf

2004-09-20

Apple의 정신(精神), 광고(廣告)

그다지 광고를 포함해서 영상 미디어를 즐기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TV 광고가 있다. Apple의 광고인데, 그 중에서도 힘(power)에 대한 광고들. 원래 Apple의 정신(精神)을 좋아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좋게 평가하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들의 정신,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광고에 그대로 드러낸 것이어야하는 것이겠지.
힘에 대한 광고들은 모두 좋지만 괜히 하나 찍어보자면, Marlee Matlin. Power is fighting streotypes. 힘은 고정관념과 싸우는 것이다. 힘 없이 살아도, 풍요롭지 않게 살아도, 부조리와 고정관념에 저항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이 광고가 정말 좋다. (라고 말하면서 속으로 대사 없이 자막만 나와서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봤다.)
Power is stretching the conventional bounaries. 힘은 구습(舊習)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이것을 봐선 확실히 자막과 대사 때문에 Marlee Matlin 광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소설 1984를 읽고 Apple의 1984 광고를 보았다면 정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1984년이 훨씬 지나서 그 광고를 보았고 그러고 나서 소설 1984를 보았으니 다행이다.
1995년 Microsoft의 Windows 1.0 광고를 보면 도대체 왜 저런 광고를 참고 봐줘야하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광고는 대체로 저련 모습이었을까? Apple이 지나치게 광고를 색다르게 만든 것인가?

사진을 보며

'어...?'
사진을 봤는데, 갑자기 멍하다. 순식간에 우울해지는 것인가? 800x600, 256-greyscale을 쓰고 있던 터라 화면 반을 채우는 이 사진, 머리 속에 흩어져 있던 우울을 갑자기 끌어내어 한 곳에 모아놓는 것 같다. 사진을 보는 순간(瞬間), 그리고 사진을 살피는 잠시(暫時),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어떻게 이런 감정이 나타날 수 있지?

뭔가 부끄러운 것을 들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되게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무슨 일이지...' 한참 사진을 들여다 봤다.
공허함 같기도 하고, 허전함 같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 같기도 하고. 어렸을 적 살던 집에 돌아와 한숨 짓는 느낌 같기도 하고.

어둡다. 창쪽으로 조금 더 다가가면 밝아질 것 같은데. 그리고 창을 열고 밖을 보면, 밖은 되게 밝을 것 같은데.
창문을 열면, 고개를 내밀 것 같다. 아래를 보면, 길에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밖을 보다, 뛰어 내릴 것 같다.

'어떡하면 좋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서 있으면.
그저 그런 전깃불만 비추는 복도에서 차갑고 무거운 문을 열고 막 안을 들여다 본 바로 그 순간 같다. 문을 닫고 다시 돌아갈까, 뭐 손 대야할 것 없나, 괜히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스무발짝 걸어서 온 것 같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바로 직전에 오른 다리를 살짝 들어올리고 약간 긴장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땀냄새와 담배 냄새가 조금 난 것 같다. 중년의 어떤 아저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막 나갔나보다, 그런 느낌이 든 것 같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버튼을 눌렀는데, 다른 사람이 아래층 버튼을 눌러서, 올라간다고 웃으면서 말해준 것 같다. 그러자 서둘러 나가는 모습을 보며 버튼을 다시 눌러 취소를 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할 때, 그 묘한 충격을 또 한번 겪으며 들뜬 기분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올라가는 동안 먼저 내리는 사람들을 무심(無心)히 본 것 같다.
지하철에서 내려 사람들 사이에 묻히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밖으로 나온 것 같다. 밝지만 따갑지 않은 햇살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또 오늘이구나'하고 생각한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지?

백업을 단행(斷行)하며

글을 읽고 나니 더 이상 꿈지럭대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곧장 백업 시작. 중요한 파일들 모두 백업하고, 용량을 보니 내 자료가 1GB 정도, bekrage 자료가 1GB 정도. 고작! 그것 밖에 안 되었나... 하고 생각해 보니 지난 달인가 언제 파일 정리 했다. 그리고 부분 백업했다. 하하 이제 기억 난다. 아무튼 백업 해두니 속이 편하다.

테입 장치 붙이기 귀찮고, CD로 구우려니 그것도 귀찮고 해서 그냥 다른 계정으로 복사해버렸다. 간단하게. bekrage에 남은 공간이 약 20GB, 다른 서버에 남은 공간이 30GB. 그리고 생각이 나서 갖고 있는 계정들 모두 용량 얼마나 사용 가능한지 확인해봤더니 모두 20GB 이상은 남아있다. 에라, 좋은 자원을 놀리고 있구나. 하긴 내가 안 쓰면 다른 사용자가 쓰겠지.

백업하면서 mysql db를 살펴 보니 버전이 4.0.20. 젠장할, 이런... 웹 사이트(web site) 전체를 utf-8로 바꾸려고 작업 중인데, DB를 생각 안 하고 있었다. 어쩐지 utf-8로 변환한 db와 table에서 정렬이 제대로 안 된다 싶었다. character set, collate 사용하려면 mysql을 업그레이드 해야하는데, 이은진님이 vendor가 제공하는 pkg만 써달라고 했는데... 어쩌나 한참 생각했다.
그러나, 별로 깔끔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아싸, postgresql 하나 더 돌릴까. 아니면 누구한테 oracle이나 db2 좀 얻어쓸까. 천천히 해야지...

그리고 백업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gentoo에서 pax가 mask 되어있다. '무슨 일이지'라고 궁금해 하면서도 애써 무시하며 pax를 수동으로 설치했다.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있을 수록 GNU/Linux system에 대한 신뢰가 줄어든다. 전에 Slackware도 pax가 없어서 실망했는데.
그러고 보면 점점 양적으로 지류(支流) 많아질 수록, "기본"을 빠뜨리는 녀석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후배에게 괜찮은 유닉스 책을 한권 권해주려고 책을 찾아 봤는데, 기본적인 유닉스 사용법에 관한 책들이 newgrp 명령을 빠뜨리고 있었다.
유닉스는 나름대로 얼개가 잘 잡혀있는 시스템인데, 그 중에서도 사용자와 권한 부분에서 newgrp는 중요하다. newgrp이 빠지면 group의 효용이 절반으로 주는데...

음, 백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컴퓨터 안의 자료를 백업하면서 내 기억도 백업하면 얼마나 좋을까.

hostname 정하기

  • hostname 정하기
  • dustbin

[11:19] <Mucha_o> 제가 아는 사이트에... 자신의 컴퓨터에 이름을 지어주자는 의견이 올라 왔는데;; [11:19] <Mucha_o> 회사 컴퓨터와 집 컴퓨터 두대에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어떻게 지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11:19] <innis_fall> 멋있게요. [11:19] <Mucha_o> 되도록 부르기 쉽고, 어색하지 않고, 재밌는 이름이어야 할텐데;; [11:20] <Mucha_o> ^^ ... [11:20] <Mucha_o> 생각하려고 하니... 머리가 텅 빈 것 같아요 ㅜㅠ; ... [11:22] <vergence> <- 메인 컴퓨터는 trash, 두번째 컴퓨터는 recyclebin, 게임용 누나 컴은 gimchigimbab ... [11:23] <vergence> 전에 번하드님 주위의 어떤 사람(아마도 #netbsd on ircnet)의 컴퓨터는 kimbab이었죠. [11:23] <Mucha_o> 하하^ [11:23] <압쯔> 악 김밥에 하드 또 깨졌어 [11:24] <압쯔> 김밥 vga가 타버렸어 [11:24] <압쯔> ...음 좋네요 [11:24] <Mucha_o> 헉;; [11:25] <vergence> 야, 네 trash(쓰레기통) 좀 쓸게. [11:25] <Mucha_o> 하하하하하 ^^ [11:25] <Mucha_o> 그 이름 멋진걸요? ^^ [11:25] <vergence> 음, 나 작업하는데, recyclebin(또 쓰레기통) 쓰지? [11:26] <vergence> 그럼 그냥 gimchigimbab(김치김밥) 켜고 쓰지 뭐. 김치김밥에 윈도우즈 있지? ... [11:27] <Burnhard> vergence: I don't understand your naming;) [11:27] <vergence> 근래에는 새로 생긴 컴퓨터에, dustbin을 붙였어요. ... [11:27] <vergence> Burnhard: 제 컴퓨터의 이름은 모두 쓰레기통의 영문 이름. [11:27] <Burnhard> I would probably call trashcan/recyclebin/... 구더기집 or similar;) [11:28] <vergence> Burnhard: 아, trash가 아니고, trashcan이라고 해야하나요. [11:28] <vergence>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11:28] <Burnhard> ah, Trashcan... reminds me of AmigaOS;)

유머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낸 유머도 좋다고 생각한다.
Freud는 유머가 억압된 욕구를 분출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그런 방법 중에 대단히 창조적이며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trashcan이라는 표현을 전에 썼었는데, 언제부터였는지 trash가 되어버렸다. 왜 그랬지? 아마도 컴퓨터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실증이 났나? 그래서 컴퓨터를 trash라고 해버린 것일까?
영국식 영어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dustbin이라는 표현을 더 쓰려고 한다. 그런데, dust bin은 왠지 감(感)이 안 온다. 먼지만 담는 조그만한 쓰래기 통은 아닐테고. 방금 사전을 찾아보니, dust가 쓸모 없는 것, 부서진 것, 부서진 것의 쪼가리라는 뜻이 있다. 역시 그랬구나. 모르고 있었네.
그래도 아직 dustbin이라는 말의 뜻, 느낌을 정확히 모르겠다.

생각 난 김에 hostname을 dustbin으로 바꿔볼까.

2004-09-19

생일

어제가 생일이었다. IRC에서 #netbsd의 topic을 "압쯔옹 생일 祝, 내일 시험 잘 보고, 돈 많이 버세요."라고 바꿨다.

그리고 블로그를 봤다. 보는 순간,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부럽다. 더욱이 왼쪽에 있는 여자친구의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素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부러웠다. 친구들이 수십명 모이고 술을 마구 마시고, 흥청망청, 시끌벅적한 생일 파티 따위는 부럽지 않다. 다만 한명이 옆에 있는 그런 조촐한 생일 파티가 진정 부럽다.

한숨이 나왔다. 12월 18일... 11월 23일...
생일을 포함해서, 날짜, 숫자 따위에 연연(戀戀)하지 않으려는 것이 지금까지의 태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날은 축하(祝賀)하기에 좋은 기회이어서 지나치고 싶지 않다. 엊그제 목요일로, 4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한달. 사귄지 한달...

나중에, 옷을 선물하고 싶다. 딱히 옷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어떤 옷이라는 생각은 없지만, 위쪽은 흰색이고, 아랫쪽은 쪽빛인 것이면 좋겠다. 그리고 쪽빛이 천천히 스며들은 그런 모습으로. 연연(娟娟)한 모습이, 좋을 것 같다.
산에서, 어느 정자(亭子)에서 선물을 주고 싶다. 차를 마시면서, 연연(涓涓)한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시간아, 가라.

일상 - 기다림, 편지

  • 편지
  • 글씨
  • 기다림의 주체(主體), 시간 안에서의 유일(唯一)함

편지를 받았다. 9월 7일에 쓴 편지를 9월 18일에 받았으니, USnail... 달팽이가 하늘도 날아 다니나, air snail mail.

전에 봤을 때에는 글씨가 별로 안 예쁘다고 생각했는데(라기 보다는 안 예쁘다고 그래서 예쁘다고 했지, 어쨌든) 지금 보니까 예쁘다. 똑바르고 정자체(正字體)의, 고결(高潔)한 느낌이 드는 그런 글씨는 아니지만, 내 눈에 즐거울만큼 충분히 예쁘다.
나는 2를 쓸 때에, 아래 가로 획을 직선으로 긋는데, 둥글게 긋기도하고 직선으로 긋기도 하는구나. 7자도 다르고.
또박 또박 쓴 글... 정성스럽다는 것을 느끼는게 이런 것인가.

이루마의 "Wait there"를 듣는다. 그리고 이어 김현식의 "기다리겠소"를 듣는다. "영원히"라는 말은 쓰지 않는 말 중의 하나이어서, 듣기 불편하지만 그래도 저 문장에는 "영원히"가 어울린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이 한 사람의 생명이란 무한히 짧은 것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이 생명 다할 때까지" 그 기간이 이 주체(主體)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원"이다. 그리고 "저 태양이 식을 때까지" 그 기간이 이 주체가 상상할 수 있는"영원"이다. 영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인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기다림은 단지 그 주체에서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 주체는 자칫 평범(平凡)해 보인다. 외모, 능력, 재력, 성격... 그 따위 것들을 아무리 살펴 보아도, 어느 누구도 평범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평범할 뿐인, 주체는 시간 안에서 진정 특별하다. 그 주체는 유구(悠久)한 시간 안에서 유일(唯一)하다. 더욱이 그 특별함은 그가 기다리는 대상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값진 것이 된다.

기다린다. 설령 다시 못 본다 해도 기다린다. 설령 다시 안 본다 해도 기다린다. 다만 부탁이 있다면, 다시 보지 않는다면, 알리지 말아라. 계속 기다리도록. 영원히 기다리지는 못하지만.

기다리겠소

김영배 작사, 작곡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꾸만 생각나는 건
너의 탓이 아니라 미운 나의 마음이요
잊으려 애를 쓸수록 더욱더 생각이 나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나의 바보 같은 마음
기다리겠소, 영원히 이 생명 다 할 때까지
사랑하겠소. 영원히 저 태양이 식을 때까지
언젠가 다시 오리라 행복했던 그 시간들
그래, 꼭 올 거야 난 기다리겠소

블로그 잘 사용하기

아직 blogBBS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blog의 시스템에, 문화에 익숙해진다면 더 자유롭고 창조적인 활동이 될거라 생각한다.

blog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크게 두개의 촛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글의 소유 그리고 다른 글과의 연계.
BBS를 사용하면, 모든 글이 그 BBS에 소유되어야한다. 내 BBS에 나만 글을 쓴다면, 그리고 그 BBS가 내 소유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BBS가 내 소유라는 것은, 커뮤니티 업체에서 제공하는 것이어서 커뮤니티 업체가 간섭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 소유의 BBS에 글을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BBS에 쓴 글에 대해 BBS 관리자가 간섭을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게시판에 반대 의견을 달았는데, 다음 날 보니 지워졌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문제인가? 매일 쓰는 글이 단지 한 줄짜리 쓰래기 비방 글이라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다. 인터넷 접속을 끊고 자기가 왜 사는 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BBS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 이 문제는 내 소유가 아닌 blog에서도 마찬가지이긴하다. 아까운 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글 백업/복구에 대한 것은 뒤에 조금 더 생각해보자.
blog를 쓰면 자기 글을 자기 소유로 하면서 다른 글과의 연계를 확실히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소위 트랙백(trackback, 엮인글)과 핑(ping)이라는 것이 blog 시스템의 큰 특징이다. trackback과 ping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문서를 찾아보자. 예를 들면, Egloos의 trackback에 대한 Help 문서
BBS의 글에, 다른 글에 대한 link를 넣을 수는 있지만, 그 글이 변화되었는지,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 무엇에 대한 연결인지 알기 어렵다. 그리고 완전히 BBS 간에, 그에 게시된 글 간에 연관을 확정 지을 수가 없다. BBS에 어떤 주제에 대해 한참 얘기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관련 글을 쓰면 이미 뒷 페이지로 가서 보기 힘들고, 새로운 글타래(thread)로 시작하려면 이전 글을 번거럽게 찾아봐야하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blog를 사용하면, 자신의 글을 지키면서 다른 글과의 연계를 확실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BBS는 많은 제약을 갖고 있어 토론은 가능해도 자신의 글을 지키기가 어렵고, 글 간의 연계를 확실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커뮤니티 업체들이 제공하는 blog 서비스는 당최 어리석게 계획되어 제약이 붙어 있다. 사실 어느 커뮤니티 업체의 블로그에도 가입하지 않아 약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약관에 작성한 글을 게시할 권리를 서비스 제공 업체가 갖는다는 항목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번 naver의 경우를 보아, 이것을 과연 서비스제공 업체의 윤리 의식에 맏겨도 되는가 의심스럽다. 서비스 제공 업체는 비판 의식 없이,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커뮤니티 업체가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는 자신의 글을 지키기 위한 좋은 여건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설치형 블로그를 쓰느냐 가입형 블로그를 쓰느냐에 대해 말이 많다. 헌데 이 점을 지적해 주고 싶다. 설치형 블로그는 노력이 많이 들고, 가입형 블로그는 무료라는 주장, 반드시 사실은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설치형 블로그에서는 자신의 글을 더 확실히 지킬 수 있다. 아래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백업 잘 하고, 부지런히 관리한다는 전제하에. 가입형 블로그에서는 백업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서비스 업체에서 책임을 지겠지만,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중에 블로그가 한물 간 것이 된다면 그 때에는 글을 어떻게 따로 저장할 것인가?
커뮤니티 업체의 블로그 서비스에 백업 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새로 알게 되었다. ps. 네이버 블로그/개인이 만든 백업용 프로그램있음. 내가 말하는건 네이버/싸이 등 회사에서 지원하는 백업시스템을 말하는 것임
설치형 블로그를 사용하기 위한 계정은 인맥을 통하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온라인에서 개인 서버 관리자들과 몇마디 인사만 나누어도 가능하다. 그리고 취미로 서버를 운영하며 무료 계정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잘 찾아 보기 바란다.
가입형 블로그엔 많은 광고가 따라온다. 그리고 가입할 때에 제공해야하는 개인 정보들, 왜 그리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 사실 이 문제는 단지 가입형 블로그의 문제만은 아니다.

덧붙여 내가 코멘트(comment)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무엇보다 코멘트로 쓰는 글은 그 블로그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기 글은 자기가 가져야한다.
이것보다 더 큰 이유, 그리고 이것과 관련된 이유로, 코멘트에 쓰는 글은 사소하다. 토론을 하려면 조리있게 잘 정리해서 자신의 블로그에 쓰고, trackback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설치형 블로그를 설치하고, 자신의 글을 확실히 지키고, 백업과 관리에 힘 쓴다면 블로그를 진정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글 전체에 하고 싶은 말을 흩어 놓아 결론은 없지만, 설치형 블로그와 가입형 블로그 중에 조언을 한다면,

  1. 설치형 블로그
  2. 외국의 커뮤니티 업체가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적어도 국가 보안법 시비는 없다. 또 가입 시 많은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3. 한국의 커뮤니티 업체가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

2004-09-18

backup을 생각하며

글을 보고, '아차'... 생각해보니, 지난 8월 초에 서버 정비하고 백업을 위한 처치를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8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정신이 없었지. 사실 지금도 정신이 조금 없기는 한데.

그리고 이은진님이 bekrage 서버에 호스팅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하면서 bekrage backup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간 bekrage 서버에도 조금 무관심하고 있었다. 아무튼 내 자료와 bekrage 자료 백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 그래봤자 DB와 file들이고, 그외에 운영체제 설정 파일 조금 밖에 안 되니까. 그리고 주기적으로 백업할 것은 DB와 file 정도이니까.

위에 저 생각이 이틀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다. 지금 쓰고 보니 조금 놀랍다. 그리고 백업하는 프로그램은 아직도 안 만들었다. 만들면 10분 정도 걸리겠지만 왠지 손 대기 싫다.
혹시 무의식적으로, 자료가 모두 날아가길 바라는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굳이 탐색해 보고 싶지도 않고.

아무래도 관리자 자리를 맡을 다른 사람을 찾아야하는 것일까?

그간 주고 받은 편지, 채팅 log, 목소리 녹음한 것들, 서로 주고 받은 음악 파일, 그 외 기록들 저장해 둔 것... 폴더 하나에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history라는 이름으로, 2004-02-11부터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도 그 안에. 조금 더 정리를 해야하기는 하는데, 일단 중간에 backup을 해둘까 한다. 그리고 또 정리해서 완성하면 그 때 또 backup하고. 그래도 나중에 또 손 대고 다시 backup할 것 같긴 하지만. 왜냐하면 어디에 공개/출판(publish, 아마도 web에)하지 않을테니. 나만 볼테니 backup을 해둬야지.
Through the wire가 있다. rap이라는 얘기 듣고 안 들어봤는데, 이제 한번 들어봐야지. 이것이라도 들으면 좀 나을까. 조성모의 "너의 곁으로". 원래 드라마 안 보기 때문에, 이 노래도 몰랐는데. 드라마도 보게 되고, 이 노래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널 지켜낼 용기 없는 날 사랑해 주겠니." 이 부분... 나도 그런 것 같다. 입에서 "좋아하는데..."까지만 나온다. 단지 좋아하는 마음만 있는 것인가, 좋아해도 어떻게 뭘 할 수 없는 상황이구나. 뭘 해줄 수 없는 상황이구나. 뭘 할 수 없는 상황이구나. 한 없이 약하기만하네, 무능하고.

그냥 백업이라고 하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일상 - 기다림, 박항률

그야 말로, 정서는 암담하리만치 평온하고, 비는 쓸쓸하게 오고, 음악은 축축하게 힘 없고, 할일은 항공모함처럼 많고...

박항률의 그림을 찾아봤다. 그런 것 같다. 기다린다는 것, 그렇게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무한히 흔들리고 있는 것. 머리 속에 폭풍이라도 들어있는 듯한 것. 무언가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는 것. 그냥 조용히 밖을 내다 보고 싶은 것. 마냥 시선이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 무엇을 계속해서 보고 있는데 머리 속엔 다른 것이 떠오르는 것. 하루 종일 차를 마시고 싶은 것. 책을 펼쳤다 이내 덮고 마는 것. 산에 올랐는데 내려오고 싶지 않는 것. 비가 오면 자연히 듣게 되는 음악이 있는 것. 그리고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머리 속에 모습이 떠오르는 것.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것.

그리고 즐거운 것, 그러면서 슬픈 것. 갑자기 웃음 짓다가 어느 사이 울상이 되어있는 것. 여전히 그대로인 겉 모습을 보면서 참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느끼는 복받치는 감정들에서 '역시...'라고 또 인정하는 것. 신기하면서도 애틋한 것.

그림 속의 여자, 눈썹이 예쁘다. 기다리는 사람의 눈썹이라서 그럴까. 거울을 본다. 눈썹이 짙기만하다. 강한 느낌이 든다. 혹시 분노, 증오일까?
초승달을 보는 것 같다. 아가씨 눈썹처럼 섬세하면서 가늘다. 끝이 뾰족한데 찔려도 아플 것 같지 않다. 초승달은 강해보인다. 밝음을 모두 풀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밝음을 모두 꼭 붙잡고 있으니 더 단단하겠지. 역시 남자 눈썹이라 두껍고 진한가. 길이가 짧아서 더 시리다.

비가 온다. 김종서의 "내 기다림의 시작"을 들어야지.

2004-09-17

커뮤니티 회사의 독재적인 블로그 서비스

QTS에 갔다가 글을 보았다. http://blog.naver.com/dominic74/60005675560 그리고 관련된 글도 보았다.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우려하던 바이다. 비단 언론기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자유의 탄압이라는 큰 시각에서 보아야할 것이다.

blog는 일종의, 개인의 언론기관화(化)에 가깝다.
이전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공공연히 내기 위해 큰 언론기관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TV나 Radio, 신문 같은 것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인터넷 공간은 자신의 목소리를 공공연히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웹 사이트를 하나 갖고자 하면 많은 수고가 필요했고, 때에 따라서는 돈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공개된 BBS가 많아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생겼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용자가 있어 쓰레기장이나 다를 것이 없고, 공개된 BBS라도 관리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나은 곳이 newsgroup이었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그러다가 blog(문서를 작성하고 배포, 공유하는 시스템이면서 문화)가 퍼지면서 희망이 보였다. 헌데, 한국의 커뮤니티 회사에서 제공하는 blog 서비스는 암담하다. 글을 게시할 수 있는 권리를 전적으로 커뮤니티 회사가 갖는다니... 자신의 글에 대한 권리를 커뮤니티 회사에 넘겨야하는 이런 정책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이번 문제에 대해서. 만약 blog에 게시된 어느 글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치더라도 커뮤니티 회사는 그 글을 보호해 주어야하는 것 아닌가? 설령 그 글이 법에 저촉된다고 생각되더라고 법에 저촉된다고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 글을 최대한 보호해 줘야하는 것 아닌가? 확실히 그 글이 법에 저촉되는 지, 좋지 않은 글인 지 판단하는 것이 커뮤니티 회사의 일인가? 그리고 또, 커뮤니티 회사는 그 글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커뮤니티 회사는 다분히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만을 제공해야할 것이다. 그 시스템에 그들의 가치평가를 포함시켜서는 안 되고.
이 일이 커뮤니티 회사의 전체적인 것인지, 커뮤니티 회사와 관련된 어떤 한 사람의 문제인 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경계해야할 것이다.

지금 누가 치졸한건지... 그 글에 달린 트랙백 중에, 누가 이렇게 썼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blog 서비스를 이용하는 한 개인의 글이 커뮤니티 회사에 의해 잠시 차단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투명하고 중립적이어야할 커뮤니티 회사가, 스스로 서비스 이용자의 글을 판단하고 그것에 대한 처분을 하는 권력을 갖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간과하는 것은 커뮤니티 회사가 스스로 권력을 키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Big Brother가 될 지 모른다. 사실 이미 Big Brother가 된 것처럼 보인다. blog에 쓴 글을 이미 커뮤니티 회사에 의해 읽히고 있고, 그것들은 평가되고 차단되고 있다.
blog 차단에 대해 커뮤니티 회사에 요구한 사항들에 대한 판단은 필요 없다. 다만 그 사용자가 요청을 했고, 그것을 평가할 것은 그 커뮤니티 회사이다.
과연 커뮤니티 회사 입맛에 맞는 글들은 무엇일까? 단지 그저 그런 글들을 계속해서 쌓아두어 자원을 낭비하고, 단지 글의 양만 늘림으로써 더 많은 광고를 보여 주고 싶은 것인가. 음식 사진이나 귀여운 동물 사진 따위 올려놓고 히히덕 거리는 글들을 원하는 것인가? 과연 정신 없는 그런 글들에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의식을 잃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맛있는 초밥 사진을 보며 맛 있다는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동안, 그리고 그것을 보며 웃는 동안, 우리의 주의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귀여운 동물 사진을 올리고, 보는 순간 생태는 파괴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가.

2004-09-16

일상 - 기다림

  • 기다림

글을 쓸까하다 말았다/만다. 전화를 할까하다 말았다/만다.
숨을 쉴까하다 말았다/만다. 그래도 숨은 쉰다.

11:20. 공부를 하고 있겠지. 책을 읽고 있거나, 과제를 하고 있거나,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나...
아침은 먹었을까. 우유만 한잔 마셨을까. 달리기 했을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 난데 없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00:23. 잘 시간 아니던가? 기억한다 혹은 기억하지 않는다. 일과표가 어디 있더라. 언제 일과표를 살폈더라. 일과표가 있었던가. 일과표가 뭐더라.
언제부터 뭘하면서 살아있는 것이지? 아니면 지금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렸나. 그럼 말을 바꿔, 언제까지 뭘하다가 죽은 것이고, 지금은 죽은 상태에서 뭘하고 있는 것이지?
아무래도 나는 지금 죽어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정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대체 지금 정확한 생각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의심한다. 그래, 죽어있다고 치자,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다시 살아야하나? 아니면 썩어야하나? 혹은 어떻게 되어야하나? 살게 되어야하나? 썩게 되어야하나?

여자친구가 전부는 아니예요.
임지혜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아마 네 말이 맞겠지.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것을 알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내가 느끼고 있는, 지각하고 있는, 생각하고 있는 지금은 그것에 동의할 수가 없다.
선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정말 힘든 거예요.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리고 그렇게 느껴. 네가 정말 옳아.
그리고 또, 선배. 후회 하지 마세요. 단지 지금 즐거운 것을 그대로 느끼세요.
그래, 그 말도 맞아. 그래야지. 아마도 그 쪽은 네가 나보다 선배이겠지. 충고 고마운데, 그리고 동의하는데, 구체적인 방법 좀 알려줘. 도대체 어떻게 버텨야할 지 모르겠네. 내가 그간 너 많이 가르쳐줬잖아. 컴퓨터에 대해서 모르는 것 있을 때마다 도와주고, 전에 C 언어도 가르쳐 줬잖아. 너한테 그거 이해시키는 것 정말 어려웠거든. 그러니까 내가 부탁하는 것 하나만 좀 알려줘. 지금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니?

칼로 배를 쑤셔도 그 아픔에 "으악"하고 소리를 지를텐데. 지금 이 극심한 고통에도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나는 무엇인가.

언제부터인 지 모르지만, 아마도 아주 오래전부터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나보다. 그러면서 빠져나오기 위해, 뭐라도 잡아보려고 이리저리 손을 휘저어보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나보다. 그러다가 굵은 동아줄을 잡게 되었고, 잠시 평안을 얻었나보다. 하지만 그 마저도 끊어진 것 같다. 혹은 그 동아줄 마저도 늪에 빠져버린 것 같다. 동아줄에 대한 의지(依支)가 무너졌을 때 이미 늪에 입까지 잠기어 버린 것이겠지. 그리고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겠지.

술을 마실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그러다가 말았다. 아무리 술을 마신들 그게 해결책이랴. 배고픈 아기에게 감정(甘精, saccacharin)물을 마시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에라, 잘 됐다. 슬픈 감정이라도 느낄 수 있을 때에 미치도록 느껴보자. 그 마저도 없다면 완전히 잊게 되는 것 아닐까? 기억이 있으니 완전히 잊는 것은 아닐테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슬픈 감정이라도 계속 된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감정이 계속 된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시간이 지나 좋아하는 감정이 더 이상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리움이라는 이름이라도 붙일 수 있겠지.
즐겨보자, 슬픈 감정이라도. 그리고 후회하지 말아야지. 슬픈 감정이라도 즐기는 것, 그것이 나의 기다림이어야한다면 그래야지. 나는 이렇게 한발짝 우주 외계인으로...

오늘도 이렇게 스스로 괴롭히며 기다리는구나.

2004-09-15

  • A
  • A: 자동률, 배반률

숨을 쉬지 않는다. 우주외계인이 되려면 멀었나.

A...
A는 B가 아니다. A는 1도 아니다. 헌데, A를 보면, GHWOIEFSL를 생각하고, A를 들으면, 825938472934를 생각한다. 또, 생각한다.

자동률, 배반률에 의해서, A는 A이다. A는 A가 아닌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A를 생각할 때에 A를 생각하고, 또 A가 아닌 것을 생각한다.

2004-09-14

님의 침묵

  • 님의 침묵 - 한용운
  • 기다림

기다린다.

전화를 끊고 이상해졌다. 사실 좋은 시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지금 모순에 빠져있다. 그 사람에겐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헌데 왜 나에겐 내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그렇다. 나도 믿는다. 만날 때에 헤어질 것을 염려하듯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비록 헤어짐이나 떠남은 아니지만.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고통

  • 언어 통제
  • 소진(消盡)
  • 김현식,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 처음 만난 날
  • 김현식, 그가 가르친 고통
  • 물러나고 싶음
  • 도망, 분석으로, 수용으로, 즐김이 아니라
  • 시간
  • 심장, 혹은 마음
  • 유식(唯識)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사태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 그리고 당분간 그리움, 슬픔, 고통, 불안 이런 말도 쓰지 않겠다.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실제로 그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제자리를 찾고 싶다.
아무런 표현도 하고 싶지 않다. 마냥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아무 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 심지어 숨도 쉬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다. 게다가 싫기까지 하다.

엊그제부터 김현식의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 처음 만난 날"을 들었다. 이럴 줄 알고 들었던 것일까?
슬퍼하지 말아야지, 혼자라는 것 잘 알고 있으니까. 후회하지 말아야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모두 김현식의 탓이다. 그의 노래에서 이런 감정들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런 감정들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혼란스럽게 죽도록 고통스러웠겠지. 아무튼 이렇게 구체적이고 다양하고 충격적인 고통은 김현식의 탓이다. 나는 예전엔 이런 고통을 몰랐으니까.

자살을 생각한다. 하고 싶다. 이대로 마음의 병이 깊어져 모든 것이 흩어지면 자연히 죽게 될까.
밝은 가을 하늘에 누워있으면, 누군가가 와서 나를 토막내어 쓰레기 통에 버려주면 좋겠다. 마치 폐지(廢紙)를 발기발기 찢어 쓰레기 통에 버리듯이. 마치 시장에서 토막난 동태의, 머리통을 깡통에 담듯이.

'나'는 '나'를 싫어하고 싶다. 도대체 뭐냐, 이 상황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는 분석할 어느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극심한 혼란과 함께 믹서에 담겨져 잘게 갈린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해도 도대체 뭘 어떻게 수용해야할 지 모르겠다. 찢어진 비닐 봉지에서 나온 닭죽이라면 어떻게 치우기라도 해보겠지만, 온통 주위를 둘러싼 안개를 어떻게 걷어내겠는가.

아무튼 시간을 얻게 되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이 시간이라는 것을 지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다시 말해 다시 연락을 하게 될 지, 만나게 될 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이상, 이 시간에 무엇인가 해야겠지. 하지만 도대체 힘을 낼 수가 없다.
나를 맷돌에 갈아다오. 잘 안 갈리면 시간을 조금씩 부어라, 그러면 잘 갈릴 것이다.

아마도 느낌 뿐이겠지만, 심장 부근이 아프다. 따끔한 고통도 아니고, 강하게 눌리는 고통도 아니다. 단지 대충 그 부근이 두리 뭉실하게 아프다. 심장이 똘똘 뭉친 것 같기도 하다.
심장을 도려내면 심장이 있는 곳이 아프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심리학에서 고통은 뇌에서 느끼는 것임을 배웠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럼에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고통스러운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는 움직인다. 고통이 세상을 둘러쌌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대로다. 이상하게도.
도서관에 갔다. 신경심리학 책을 빌릴 생각이었는데, 불교 관련 책을 빌렸다. 유식입문(唯識入門),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 전부터 읽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불교적인 생각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제 보문산성에서 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막상 소리를 지르려니 소리를 못 내겠더라. 그래서 "어이"라고 여러번 외쳤다. 그리고 누구한테 애원이라도 하든 소리를 질렀다. 이름을 불러 봤다. 좋아한다고 외쳐봤다. 메아리가 없었다.

2004-09-09

군대에 대한

  • 군대, 무망(無望)

그러고 보니 군대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이 거의 없다. 현재 고심하는 큰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blog에 글을 쓰지 않은 것을 보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 대한 수용이 이 부분에서는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2001-01-02 학군단을 포기하고 병역특례를 알아보면서 일을 하다 2002년 가을 학기에 복학하여 2004년 봄 학기 마치고 졸업. 그리고 현재 학사 장교 지원 준비 중이면서 또한 병역특례 알아보고 있는 중.
군대에 대해 쓰자면 이 정도.

군대에 대해 생각하면서, 진정 이 세상을 증오하고 싶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얼마 전에 생긴 여자친구가 미국으로 돌아가서.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나에게 주어진 구속의 하나라는 생각이고, 다른 어떤 구속보다도 강해서 진정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 갈등하고 있다. 아마도 강한 욕구가 생겨 반대쪽에 힘을 실어 준 탓일까.
개가 고양이를 낳지 않듯, 한국인은 바로 한국인을 낳아 기른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났고, 이 땅에서 이 사회에서 자라고 살고 있다. 물론 그 혜택과 제약을 포함하여. 어떻게 되었든 이 조건을 수용해야하며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나의 인지를 계속해서 이쪽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강제에 해당하는 병역이지만, 그것을 이행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하도록 "강요"당한다는 것에서 좌절스럽지만, 다시 말해, 병역을 이행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선택은 할 수 없어 좌절스럽지만, 병역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 선택할 수 있기에 조금은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한정된 자유이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일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갖고 있던 생각이다. 하지만 근래에 이 생각이 흔들린다. 생명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강요되었다. 이 사회에 속하게 되었고, 이 사회에 구속되었다. 주민 등록증을 발급하도록 강요되었고, 심지어 성인이 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존재에 동의한다고 어디에서도 내 손을 들어올린 적이 없다.
왜 타인이 만든 사회는, 제도는 내가 순순히 동의하기를 원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나라는 개인 하나가 부족한들 그들의 삶에 무엇이 부족해지나? 나는 무력하고 능력없는 단지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나는 진정 나를 우리에서 분리해내어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무력하다고 느낀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없다. 대한민국에 대해 테러를 할까? 대한민국 정부를 모두 부수어버리고 나에 대한 강제를 없앨까? 불가능... 어쩔 수 없다고 느낀다. 병역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사 장교, 병역특례의 길을 찾고 있다. 그리고 입에서는 '젠장할'이라고 중얼거린다. 무망감(無望感)

며칠 전 운동하다가 무릎을 조금 다쳤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볼 생각인데, 차라리 심하게 다쳐서 재검 받아 4급 받으면 좋겠다. 젠장할...

쓰다보니 요지(要旨)가 없다. 하긴 이런 넋두리에 무슨 요지...

우리의 분열

  • 주관과 객관
  • 나와 너
  • 이질성과 분열
  • 분열과 통합: 바른 해결책은?
  • 분열과 통합의 양상
  • 분열의 허상
  • 요지: 우리의 문제

흔한 일일지라도 그것이 각각의 경우가 될 때에는 모두 특별하다. "모든 생물은 죽는다"라는 일반적인 명제가 있고,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라는 특별한 명제가 있을 때, 뒤의 명제는 앞의 명제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주체의 입장에서.
특별한 경우를 단지 일반적인 경우처럼 볼 수도 있다. 나, 우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 다시 말해 "모든 생물은 죽는다"를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에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에 그의 아버지는 단지 객체이다.

때때로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나와 너로 나누고 그 문제를 너의 문제로 미루어버린다. 다시 말해 우리 전체를 작은 우리와 저들로 나누고 저들의 문제로 만든 다음, 저들에 대해 비난하면 작은 우리에게 오는 책임이 줄어든다.
정치를 보면, 부정한 정치가들,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치가들을 우리와 동떨어진 집단으로 치부하고 비난하기 마련이다, 비록 그들이 나, 작은 우리를 포함한 전체의 우리에 속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 우리에 대해서 동질성이 결여될 경우, 그것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분열이다. 다시 말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 외국에서 온 그들로 치부하는 것이다. 또, 병역 비리에 대해 단지 그 비리와 연루된 사람들이 부정한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열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하지만 그다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결국 저들의 문제는 곪아 터져 우리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해결책은, 작은 우리와 저들을 통합하여 우리 전체를 다시 찾고, 그 문제를 우리 전체가 함께 떠 맡는 것이다.

분열 되었을 때에, 우리는 비난할 수 있다. 자신이 공금(公金)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나를 우리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 전체 중의 일부는 나를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우리로 생각하는 우리 전체 중의 일부는 그 문제에 대해 동정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접하는 우리의 분열은 대부분 헛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00년 8월 말 정도. 밤 늦게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류장에 정차한 두 버스 사이에 있던 오토바이가 불행히도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엔 아버지, 8살 정도 되어보이는 딸, 3살 정도 되어보이는 딸이 타고 있었던 것 같다.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큰 여자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두개골이 손상되었다. 그 모습을 본 한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어머, 우리 아기 어떡해! 그 때엔 그 아주머니가 왜 "우리 아기"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 여자 아이는 그 아주머니의 친딸이 아니었다.
지금에와서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진정 "우리"의 아기였고, 여전히 그렇다.
그 때에 그 아주머니가 느낀 것은 무엇이겠는가. 충격은 물론이고, 안타까움, 슬픔 등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기가 죽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아이를 단지 누군가의 딸이라고 여긴 사람에게는, 충격적이겠지만, 보기 흉한 꼴을 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기가 죽었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2004-09-08

썼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

  • 2004-08-23에, 썼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

2004-08-23. 정말 힘든 날이었다. 떠난다는 것과 기다린다는 것.
나중에 들었지만, 실제로는 12:30까지 비행기 안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아침에 문자 주고 받고, 전화 통화 했지. 그리고 산에서 11:00 정도에 돌아왔어.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 애써 무시하면서 책을 읽었어. 그러면서 전화기를 수십번 살핀 것 같아.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문자 메시지가 온 것 같기도 하고... 전화를 걸어볼까,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볼까... 혹시 어머니가 받으면 어떻게 하지... 이미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도 계속 책을 읽었어. 책에 집중이 더 잘 되더라, 이상하게도. 11:30 정도 되니 더 불안해졌어. 12:00에 가까워질 수록 불안함도 강해지고 감정이 복잡해졌어.

가는 날부터 이렇게 힘들면 앞으로 어떻게 버틸까. 차라리 다음 만날 때까지 완전히 잊은 것처럼 지내고, 다음에 만날 때 처음 만난 것처럼 서로 좋아하자고 그러는게 좋았을까하고 생각도 들고.

어느 덧, 12:00. 하늘을 봤는데, 하얬다. 구름이 걷히길 바랐는데... 그래도 아실이 가는 하늘 길은 맑기를 바랐어.

서울엔 날씨가 맑고 구름이 조금 끼었다고 했지. 대전은 밤새 비가 온 탓인지 구름이 많이 끼어있었어. 파란 하늘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비가 온 탓이었는지 공기가 굉장히 맑았어. 대전 저쪽 끝의 산까지 선명하게 보이더라. 이 모습을 아실이도 보면 좋았을텐데... 정말 상쾌했거든.

12:00이 지났다. '갔구나.'

허망감이 몰려왔어. 누구라도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고. 아무래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나갔어.

2년 정도 전에 갑자기 여행 간다고 하고 사라진 사람이 연락을 해서 만났어. 사실은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친구들 당구 치는데 따라가고, 술 마시고 돌아왔어. 당구 구경하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어. 편지가 와 있다고. '그렇지, 편지가 있었지.' 보고 싶어 죽겠는데, 당장 집에 가지 않았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까.

집에 와서 편지를 보니, 마음이 쓰리네. 조용한 방에서, 혼자 편지를 펼칠 생각을 했지. 그런데 감히 손으로 못 뜯겠더라고. 소중히 열고 싶어서 새 칼을 사왔어. 그리고 열려고 했는데, 그래도 준비가 덜 된 것 같았어. 그리고 차를 끌여 갖고 왔어.

편지 읽다보니 목이 메였어. 읽고 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 '그래,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쓰다가 만 글

  • 2004-06-20에 쓴 글

파일을 정리하다 2004-06-20에 쓴 글을 보았다. 쓰다가 말았는데, 지금 보니 그 때의 정서가 기억난다. 방학이 막 시작하여 잠시 방황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그런 생각하지 말고, A에게 조금 더 일찍 연락할 걸... 그럼 한번은 더 만났을 지도 모르는데.

어제와 오늘, 이틀동안 빈둥거렸다. 게임을 하고,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잠을 자고, 이리저리 서성이고...
방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방학이다.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 다른 세계로 연결, 나의 정신에서 시작해서.

Yesterday and today, just loafed around. Played games, watched TV, listened to music, slept, wandered... Did think that it is holidays. That's right. It is holidays.
(I) Do want different experiences. Connection to another world from my mind.

2004-09-06

대중(大衆)의 발전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운 표현에서, 그것보다 더 다양해지고, 더 복잡해지고, 더 근원적이고, 더 자유로워진 것, 그리고 지는 것...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예술품을 보면, 완벽이라는 형용사를 붙여도 지나치지 않을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했고, 중세에 이르러 신성(神聖)을 드러내기 위해 오히려 외현을 억눌렀고, 근대에 이르러 아름다움의 표현에서 벗어나 단순히 표현으로 탈피할 수 있었고, 현대에 이르러 고급 예술에서 탈출, 사실로의 회귀, 다양화. 그런 것을 볼 때에 결국 가장 근원에 있는 것은 표현의 욕구일 것이다.
손진훈 교수가 그랬지, "앞으로의 산업은 도파민 산업이 될 것이다."

사진은 후에 나와서 이미 다른 예술 분야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을 많이 쉽게 포함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사진을 단순히 상(象)을 취(取)하는 행위 이상(以上)으로 보는 것은 조금 늦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래에 대중이 그런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된다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양적인 발전이 질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않던가.

2004-09-04

안다(hug)

  • 안다

무딘 몸이 자유로운 말보다...
안고 싶다, 따뜻하게.

hug_idea2003-1.jpg

2004-09-03

애별리고(愛別離苦)

  • 불교(佛敎)의 8고(四苦)
  • 실험(實驗), 실제로 경험함
  • 마음을 다짐

불교에서는 8고(苦)가 있다.
4고는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생리적인 변화에 해당한다. 그리고 4고에 추가로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취온고(五取蘊苦)가 있어 8고가 된다. 뒤의 4가지 고통은 심리적인 것, 행동적인 것에 해당한다.
4고가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느낄 것이며, 피할 수 없고, 인정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뒤의 4가지 고통은 그 충격을 따지자면 앞의 4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아마도 지금 겪고 있는 것이 애별리고일까.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괴로움.
그래도 희망이 있으리라. 왜냐하면 지금의 헤어짐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니까. 기다림이, 그리고 기다릴 수 있음이 바로 희망이겠지.

오늘도 이렇게 그리워하고, 또 스스로 위로하고, 마음을 다지고 있구나. 어떻게든 기다리고, 만나리라.

국화 옆에서

  •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