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Rxvt에 한글 폰트를 한양 라운드고딕(roundgothic)으로 쓰고 있었다. 라운드고딕은 너무 딱 맞게 사각형으로 정형화되어있어서 오래 보고 있으면 조금 지겹다. 한양 라운드고딕, 바로 윈도우즈에 쓰이는 굴림 폰트.
아주 전에는 웹에도 한양 폰트를 썼는데, 얼마 전부터 웹에서는 윤디자인 폰트를 쓰고 있다. 딱 맞는 모양의 글자들에서 벗어난 윤디자인의 굴림은 좀 자유롭고, 율동감이 있다. 타자체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못하지만 윤디자인의 굴림 폰트도 보기 좋다.
Rxvt의 폰트를 윤디자인의 굴림으로 바꿔봤다. 아주 만족스럽다. 한글도 많이 써야겠다. 한글 폰트가 화면에 예쁘게 표시되지 않아서 그간 한글을 잘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욕심이 생긴다. 한양 타자체가 갖고 싶다. 지금 갖고 있는 한양 폰트와 윤디자인 폰트는 어떻게든 라이센스 문제가 안 될 곳에서 갖고 온 것이라 걱정 없는데. 한양 타자체는 구하면 구하겠지만, 돈 주고 사기는 좀 아깝고, 타자체라 많이 쓸 것은 아니고...
그러고 보니 타자체 정말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한 때는 보고서를 latex으로 만드는데, 온통 타자체로 작성해서 제출한 적이 있다. 서식도 딱 수동타자기로 하는 것처럼 만들어서. 수동타자기로 만든 문서, 보면 왠지 모를 즐거움이 있는데.
타자체 freetype과 잘 맞으려나. 그리고 이왕이면 BeOS에서도 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려면 macintosh 플랫폼용(用) 폰트 네임도 들어가야할텐데. 아마 안 되어있겠지. 하나 구입하고, 수정해서 쓸까. 수정하면 불법인데...
아, 오늘이 이소룡의 생일이었구나. 어쩐지 케이블 TV(CATV)에서 용쟁호투가 나오더라. 하긴, 용쟁호투는 자주 하지만.
케이블 TV에서 용쟁호투가 자주 방영되는데, 완전히 본 적이 없다. 항상 뒷부분만 봤다. 오늘 처음부터 봤다. 물 마시다가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켰는데, 딱 맞게 시작했다. 헌데, 보고 나니 지금까지 봤던 부분이 거의 중간 부분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시간이 짧은 영화인 것 같다.
아무튼... 생일이었구나. 음력 생일이라면, 나와 하루 차이네. 검색해 보니, 양력 11월 27일이다. 쳇.
잤다. 일어났다. 기분이 좋다. 잠은 정화(淨化)의 시간이다.
아침이다. 하루 일을 계획한다. 많은 일을 해야지.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뭐든지 하고 싶다. 의욕이 넘친다.
은행 갔다가 일 보고, 약수 떠와야겠다.
도서관 가서 글 쓸 것 정리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흐름도 정해야겠다. 개요는 이미 작성했고.
돌아오면 웹 사이트 조금 더 수정해야겠다. 디자인도 조금 생각해보고, 문서 머리와 꼬리 부분 만들어야겠다. 일단 이것부터.
그리고 운동하고, 차 마시고, 명상하고...
저녁 먹고 글 써야지. 머리 속에서 말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다.
힘이 넘친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움직이는 방법을 안다. 방법은 간단하다. "움이면 된다, 하면 된다."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제의 감정은 남아있지 않는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억압(repression)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움직인다. 어쩌면 ("나는"을 생략하고) 움직인다. 움직인다. 존재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움직인다.
돌고 돌고 돌고, 윤도현 노래
오늘 같은 날은 이런 노래가 어울린다.
오늘은 어떤 날이다. 세상에 수 많은 날 중의 하나이고, 그 날이라는 것은 서로 경계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인식은 그만큼 왜곡되어 굳혀져 있기 때문에.
오늘은 생일이다. 덕분에 미역국을 먹었다. 미역국은 미역국의 맛이었나보다.
정서적으로 저조하다. 하루 종일 어머니와 왜 이리 부딛히는지...
어쩌면 지금까지 살면서 이루어진 생활양식(life-style, Alfred Adler가 사용한 의미에서)은 어머니의 생활양식과 거의 반대인 것 같다. 스스로 보건데, 가족의 생활양식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생활양식을 만들어온 것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불쌍한 일이다.
오늘도 잠을 잔다. 가끔은 무엇보다 잠이 먼저.
엊그제 다 읽었는데, 이제야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부류의 소설에 익숙해져 가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우선 다 읽은 느낌은 놀랍다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라는 사람이 쓴 이 글, 놀라울 정도의 상상력이 담겨있다. 그 당시에 이런 내용을 상상하고 글 쓴 것이, 거의 지금 현재를 보고 기술하는 수준인듯하다.
그리고 문맥을 통해 전달되는, 주의를 자꾸 끄는 내용, 흐름. 시각적인 묘사가 많이 나와서 상상을 많이 할 뿐만 아니라, 묘사가 상세하고 자연스러워서 생생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뒷부분에 가서 대단히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글은 정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과연 올더스 헉슬리는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얼마나 애독(愛讀)했을까 하는 생각에 놀란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셰익스피어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중학교 때인가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을 대충 읽어본 것밖에 없다.
좀 아쉬운 것은, 아마도 그것도 저자가 의도한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앞 부분의 내용 전개와 뒷부분의 내용 전개가 그다지 일관되지 않은 듯한 느낌. 그리고 결말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앞 부분에서는 버나드를 초점으로 두는데, 뒷부분에 가서는 존이 초점이 된다. 앞 부분에서는 그 세계라는 것이 "멋지고 새롭다"는 의미에 의해 얼마나 반어적으로 참담한지 보여주는데 치중하고 있다. 뒷부분에서는 신념, 종교, 개인과 집단, (그 세계의 어그러진) 문명과 자연스러운 삶... 그런 것들이 주제가 되어있다. 뒷부분에서 총통과 존의 대화는 마치, "1984"에서 윈스턴과 오브라이언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감상문을 써야겠다. 감상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꼭 이 책을 어떻게 처치할까 하는 궁리를 하는 것 같다. 마치 막 사온 돼지고기 반 근을 어떻게 요리할까 궁리하는 것처럼. "멋진 신세계"는 정말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일단 "동물 농장"에 대한 감상문을 쓰고 다음은 "멋진 신세계"에 대해 써야겠다.
전에는 소설을 읽으면 괜히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는 별로 그렇지 않다. 문학이 현실을 보고, 현실을 갈구한다는 것을, 이 정도의 책을 통해 이제 용납/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기를 쓴다/쓰지 않는다. 생각을 한다/하지 않는다. 느낀다/느끼지 않는다. 경험 한다/하지 않는다. 운동한다/운동 하지 않는다.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 쓸까, 말까. 그러면서 쓰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쓴다.
갈등엔 세가지가 있다. 접근-접근, 접근-회피, 회피-회피. 접근은 하고 싶은 것에 해당하고 회피는 하고 싶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
지금 일기를 쓰는 것은 그건 하나로 접근-회피 갈등이다. 일기를 쓰고 싶다. 꾸준히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후로 늘어가는 글을 보며 조금은 뿌듯하게 느낀다.
일기를 쓰고 싶지 않다.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쓸 수 있는 말은 너무 적다고 대충 핑계를 대고 싶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기 싫어서 그런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핑계거리가 있기 때문에 일기를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BBC radio 듣고 있는데, 한 노래가 귀를 잡아끈다. 잘 들어보니 목소리가 정말 좋다. 가사는 잘 안 들리는데, 들리는 가사로 검색해보았다. 찾았다. Alfie라는 노래이다.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불렀나 본데, Dionne Warwick가 부른 것이 좋다.
찾아보니, 오래된 영화의 삽입곡이다. 이번에 리메이크(remake)되어 나왔다고 한다. 한번 찾아봐야겠다. 한국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용에 대한 소갯글을 읽어보니 조금 꺼려진다. ladykiller에 대한 내용이라... 봐도 될까?
쥬드 로(Jude Raw)가 나온다한다. 잘 생겼다고 그랬는데...
원작이 영국의 것이었나보다. 흠, 또 영국. 하긴...
Alfie
What's it all about, Alfie?
Is it just for the moment we live?
What's it all about when you sort it out, Alfie?
Are we meant to take more than we give
Or are we meant to be kind?
And if only fools are kind, Alfie,
Then I guess it's wise to be cruel.
And if life belongs only to the strong, Alfie,
What will you lend on an old golden rule?
As sure as I believe there's a heaven above, Alfie,
I know there's something much more,
Something even non-believers can believe in.
I believe in love, Alfie.
Without true love we just exist, Alfie.
Until you find the love you've missed you're nothing, Alfie.
When you walk let your heart lead the way
And you'll find love any day, Alfie, Alfie
선배가 맥을 샀단다. 며칠 전에 미디(MIDI)용으로 중고 맥을 알아본다고 물어왔는데, 1.2㎓짜리인가 G4 샀다고 한다. 쩝, 좋겠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 좀 구해 달라고 한다. (으윽...) 하지만 뭐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데 돈 주고 구입할 수는 없지 않은가. 뭐 동아리에서 의식 없이 빈번히 하던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입수 했다. 핫라인 사이트 몇 곳 돌아다니니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있다. 역시...
현님한테 들었는데, PDF Invader를 쓰지 않아도 Quark에서 pdf 만들 때에 이런 방법을 써도 된다고 한다. adobe ps 드라이버를 사용하여 Quark에서 ps 파일로 출력을 한다. acrobat distiller를 이용해 ps 파일을 pdf로 바꾼다. 그러면 편하게 된다고 한다.
Quark에서 eps로 저장하여 pdf로 바꾸는 것은 단점이 있는데, eps로 저장할 때에는 한 페이지씩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텍스트가 제대로 텍스트로 저장되는 지 궁금했다. 때때로 한글이나 일문, 중문 같은 2 byte 문자들이 들어있는 상황에서는 텍스트가 보이기는 해도 텍스트를 복사할 수는 없는, 깨진 텍스트로 들어가거나 그림으로 들어간다. 현님의 말로는 조금 손을 대어서 설정을 해주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나중에 시도해 봐야겠다.
전화를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내내 웃는다. 웃지 말라고 한다. 웃음을 멈춘다. 다시 웃는다.
낙서를 한다. 펜을 이리 저리 움직인다. 그리고 공간을 메운다. 검은 색을 본다. 형체를 알 수 없다.
전화를 하며 낙서를 한다. 종이를 보면 무엇이 있는데, 감히 그림이라고 할 수 없다.
생각 없이 바라본다. 자연히, 보이는 것은 웃는 모습이다.
상하수도 요금, 종합 토지세, 전기 요금도 웃는다. 모두 다 웃어라, 세상 사람 모두.
엽서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조금 의외였다. 왜 하필이면 저런 그림의 엽서가 있었을까. 다른 보기 좋은 엽서도 많을텐데.
나에게 편지를 써본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저 - 원제 Brave New World, 저자 Huxley, Aldous Leonard. 책에 저자의 이름에 ,가 들어있다. 무엇인지 모르겠다 - 를 읽고 있다.
그 전에는 "동물 농장", 죠지 오웰 저 - 원제 Animal Farm, 저자 George Orwell) -를 읽었다. "동물 농장"에 대한 독후감을 쓰려고 했는데, "멋진 신세계"를 읽고 써야할 것 같아서.
근래 여유로운 시간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좀 쓰려고 한다. 평소에 쓰는 것처럼 짧게 몇 줄짜리 글이 아니라 좀 긴 분량의 풍부한 내용의 독후감을 쓰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 것이다. 첫번째가 "동물 농장"이었고, 다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1984", "어린 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anture in Wonderland),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 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그리고 시간이 좀 많이 나면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도 시도해 보려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한 권짜리 책 말고, 열 권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멋진 신세계"는 계획은 없었지만, 읽으면 쓰려고 한다.
사실, 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니라 독후감을 잘 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동물 농장", "1984", "멋진 신세계", "어린 왕자" 같은 소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 쓸 내용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소설은 얼마나 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쓰면서 눈치 챈 것인데, 좋아하는 소설 중에 많은 수가 영국 출신 작가가 쓴 것이다.
보통 문학서 보다는 사상서를 보는 편이라 독일 출신의 작가가 쓴 책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문학은 또 영국의 것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사상서 중에 다시 읽어 볼만한 것은...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 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저, 자끄 라캉, Lemaire, Anika 저, 유물론-반영론-리얼리즘, Lecourt, Dominique 저, 韓國의 儒學思想(이 책은 거의 다 한문. 읽다가 포기 하기를 여러번).
그 외... 사랑의 생리, Wilson, Glenn 저.
어제는 좀 무리했나보다. 신체적으로 대단히 피곤하다.
친구가 한 이야기가 머리 속에 남아있다. 그 친구가 좋아한 A1와 A2. 잡지를 샀는데, 부록으로 마스카라(mascara)를 받았다고 한다. A1를 만나 마스카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A1가 말하길... 아버지 드리세요.
충격적이었다. 놀라웠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마스카라는 A2에게 갔다고 한다. A2를 만나 마스카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달라고 했다고 한다.
세상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일부는 현명하고, 겸손하다.
방금 한 30여분 사이에 정서가 심각하게 이상해졌다. 무슨 이유일까. 갑자기 정말 쓸모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지난 30분 동안 있었던 사건, 사고(思考), 감정...
배가 고파 간단히 밥을 먹었다. 돼지 고기 찌게와 김치와 생채, 밥. 그리고 잠시 쉬는데, 이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인터넷이 안 된다고 하여, 사촌 동생에게 이것 저것 점검해 보라고 했는데, 전화로 확인할만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이모네 가서 확인해보니 ISP의 문제인 것 같아 상담소에 전화해서 내일 점검 오라고 했다. 그리고 인사하고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빵집에 들렀다. 지갑을 열어보니 비어있고 빵집에서 준 적립금 카드만 있다. 카드는 한번만 더 채우면 쓸 수 있는 것임을 확인했고, 책상 위에 돈을 꺼내 놓고 지갑에 채우지 않았던 것을 기억했다. 마침 주머니에 천원이 있어 빵집에 들어갔다. 빵을 두개 고르고 카드와 함께 돈을 냈는데, 이천원 이상 구매시에만 적립금이 추가된다한다. 그래서 가볍게 실망하고 나왔다. 집에 돌아와 빵을 내려 놓으며 보니 거실에 어머니, 형, 누나가 있었다. 형이 무슨 빵을 달랑 두개만 샀냐고 물어서 돈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누나가 적립금 카드 쓰지 그랬냐고 그래서 카드가 아직 다 차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시점 이전에도 정서적으로 좀 저조했는데, 이 시점에서 좀 더 많이 저조해졌다. 무언가 이 시점에 실마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빵을 먹고 있는데, 형이 빵에 피가 묻은 것을 보이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울을 가져다 입안을 들여다 봤는데, 잇몸에서 피가 나왔다. 피를 닦더니 빵을 계속 먹는다. 이 시점에서도 더욱 저조해졌다. 빵을 하나 들어 반으로 쪼개고 반만 먹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이것은 억압(repression)인 것 같다. 이것도 살펴 봐야겠다. 그리고 책을 읽을까 하다가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기 전에 홍차를 만들었다. 찻물을 끓였는데 남아서 누나를 불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찻잎이 아깝다. 그래서 차를 누나와 나누어 마셨다.
아마도 이모네에 갔을 때에 사촌 동생들의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았나보다. 의식적인 수준에서 지각하지는 못 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안 좋았나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흐린 하늘을 보며 울적한 느낌을 가졌나보다. 만약 그 사람과 가까이에 살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왠지 자신이 약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난 것인데, 아까 TV에서 본 것 때문에 그 때에도 정서적으로 저조하기 시작했었나보다. TV에서 본 것은 20세의 남자, 19세의 여자가 혼인하고 시부모와 함께 사는 모습이었다. 보면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빵을 산 것이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또, 제대로 소비를 하지 못 했다"라는 것이다. 나올 때에 지갑에 돈을 넣어서 나왔어야했는데 그리하지 못 했고, 그러다보니 가족의 수에 맞게 넉넉히 빵을 사지 못 했고 그것 때문에 또 한번 좌절했나보다. 아마도 이것이 핵심이 되는 것 같다.
빵을 먹는데, 형이 빵 두개 중 한개를 먹었다. 빵을 두개 밖에 안 사온 내 탓이긴 하지만, 당연히 빵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먹었어야하지 않을까? 결국 어머니와 누나는 빵을 먹지 않았고, 형이 빵을 하나 다 먹었고, 나는 빵을 반개 먹었고, 나머지 반은 남았지만. 그리고 피가 나는데도 계속 빵을 먹는 형의 모습이 기분 나쁘게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기분 나쁠 것도 아니다. 아까 들었던 생각이 지금은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니 억압(repression)이 성공했나보다. 언젠가 기회를 보아서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올까. 그리고 고작 빵 두개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자증난다. 더욱 싫은 것은 빵을 두개 밖에 사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 다시한번 제대로된 소비를 하지 못 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차를 나눠 마신 것도 그렇다. 차라리 찻잎을 넉넉히 넣을 것을...
있었던 일들과 관련된 감정에 대해 쓰면서, 쓰고 나서 보니 정서적으로 좀 괜찮아졌다. 이것도 감정을 다루는 하나의 방법이겠지. 하긴 이런 이유로 일기를 쓰는 것 아니었던가. 감정들을 종합해보니, 두가지로 요약된다.
소비에 대한 불만족은 꽤 오랜 문제이고 이미 분석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 문제이다. 나누어야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어렸을 때 지나서는 별로 느끼지 못 한 것 같은데. 함께 사는 것이 응당 그러한 것이겠지만, 요즘 좀 지친 탓일까.
소비... 소비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다. 헌데, 소비하는 것은 두렵다.
초등학교와 관련 있는 것 같다. 대전 문창초등학교를 나왔다. 대전 문창초등학교는 항상 "근검 절약 시범 학교"라는 딱지를 달고 다녔다. 4학년 때였던가, 일기장을 나누어 주었는데, 뒤에는 용돈 기입장이 있었고, 뿐만 아니라 월별 가계부를 쓰는 공간도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쓰는 가계부를 한달마다 옮겨 쓰고 그것에 대해 계산하고 그랬다. 게다가 몽땅 연필 쓰기 운동을 했다. 짧은 연필을 끼워쓰라고 연필 깍지를 나누어준 적도 있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자주 근검 절약과 관련된 것을 그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 자주 강조되었던 것이 "근검 절약"이었다. 중학교에 가서 학용품을 마구 쓰는 학우들을 보고 많이 놀랐던 것이 기억난다. 그 정도로 초등학교 때의 교육은 소비와 관련해서 나의 문제에 깊은 뿌리가 되고 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다루어야할 지 잘 모르겠다. 너무 깊은 뿌리이기 때문일까.
전화도 오고, 문자도 온다.
생일이 맞긴 맞나보다. 하긴...
이것 저것 선물도 받고. 흠... 그래도, 별로다.
아직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단지 숫자일 뿐이라는 것. 시간에 금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날짜에 정해진 단위가 - 일주일, 한 달, 한 해, 10년, 60년 그런 것들 - 있는 것도 아니다.
힘 든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사소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어머니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다툼을 한다. 피하려고 해도 피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고집, 나의 고집...
짧은 하루에 많은 일이 있었다. 졸립다. 피곤하다.
일단 잠을 자자. 잠을 자고 일어나 내일에는 즐겁겠지. 자는 동안 오늘의 피곤이 모두 사라지겠지.
만나서 밥을 먹었다. 좋은 이야기도 듣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행복...' 마음에 무슨 때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남을 위해 행복을 기원하면 점점 마음이 고와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너'를 만나 한 없이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죄를 지었는 지도 모르지만 천둥 소리에 겁을 먹는 원시인처럼, 나는 그런 사람 같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기원하는 것 외에는.
언젠가 이런 것을 쓴 적이 있다. 언제 썼는 지 불행히도 찾지 못하겠다. 아마도 1999년에 쓴 일기였나보다, 지금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어느 여름 날이었다. 비가 오는 오후였다. 하늘이 온통 하얗고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옆으로 승용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10미터 정도 앞에 멈추었다. 운전석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그리고 우산을 들고 다른 편으로 가 옆 좌석의 문을 열었다. 중년의 남자가 내렸다. 여자가 우산을 받쳐 주었다. 그런데 그 우산은 한쪽 살이 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원호(圓弧, arc) 모양이었다. 그 여자는 조금 늦게 우산의 살이 나간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빠르게 우산을 고쳐 잡았다. 우산의 살이 나가 비가 새는 곳을 자신의 쪽으로 돌린 것이다, 그 남자가 비를 덜 맞도록 하기 위해.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우산을 천천히 돌리는 단 몇초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대로 박혀있다. 그 모습은 진정 아름답고 숭고했다.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 그 여자가 그 남자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찢어진 우산에 비가 새면, 그 비를 내가 맞을 수 있도록... 비록 내 옷은 낡아 찢어지더라도 내 마음은 온전하여 너를 포근히 감싸 안을 수 있도록... 내가 더 너그럽고 안정된 사람이면 좋겠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렇게 행복하면 좋겠다. 그리고 비가 와서 세상 모든 것이 정화(淨化)되면 좋겠다.
비... 언제 올까. 비가 오면 술을 한잔 마셔야지. 청주(淸酒)를 사다가 따뜻한 물에 담가 두고, 막 쪄낸 떡을 사 와야지. 그리고 돌아오면 따뜻한 청주를 한잔 따르고, 떡을 한입 오물오물 씹으면서 비 오는 것을 봐야겠다. 그러면 나도 행복할까.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어찌해야 옳으냐.
비 오는 날 수채화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음악이 흐르는 그 카페엔 초콜렛색 물감으로
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불 아랜 보라색 물감으로
세상 사람 모두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그림처럼 행복하면 좋겠어
친구와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다. 택시 기사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신호 바뀔 때에 꿈지럭 거리고 있으면 경적이 울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 이야기 하게 되었다. 친구까지 포함해서 셋이서 '대전 사람들은 그나마 잘 기다리는 편이다'라고 대충 결론을 짓고 이야기를 웃으며 마무리 하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느라고 택시 기사가 조금 신호가 바뀌었는데 조금 늦게 출발 했나보다. 그리고 뒤에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말하기를, 대전 사람 아닌가봐.
친구도 웃고, 그 기사도 웃었다.
하지만 대전도 급박해지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력이 많이 안 좋아졌다. 학사 사관 지원한 터라 시력이 많이 걱정 되었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나쁘지는 않은가보다.
아무튼 시력이 안 좋아지고 학사 사관에 신경 쓰면서, 그리고 학사 사관 체력 검정에 신경 쓰면서 느낀 것이... - 표현이 조금 과격한 것 같지만 - "늙는/낡는 것"에 대한 느낌이다.
사실, 건강 염려 경향이 강한 편이고, 신체 손상에 대한 공포도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신체적인 기능이 저조해진다는 것은 꽤나 강한 정서적인 충격을 준다.
그 중에서도 시력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점점 나빠져, 어느 순간 시력이 이렇게 나빠졌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에휴, 새월 타령은 그만 해야지.
아직 20대인데, 조금 두렵다. 운동 열심히 하고 그러겠지만, 시력은 어쩐담... 수술 할까 :-P
슬랙웨어(Slackware)는 꽤나 부지런히 업데이트 되는 편인데, 근래 좀 느린듯하다 했다. 역시 문제가 있었나보다. 패트릭 볼커딩(Patrick Volkerding)씨가 심각하게 아프다고 한다.
"Last post?" Tuesday, November 16, 2004, 10:43 패트릭 볼커딩의 편지
지금 사용하는 GNU/Linux의 배포판이 바로 슬랙웨어(Slackware)이다. 슬랙웨어 골수분자(骨髓分子)는 아니지만, 그래도 슬랙웨어를 꽤 좋아한다. 단순하면서 얼개가 잘 맞추어진 배포판인데다, 패키지들이 제 때에 신속하게 업데이트 되어 좋아한다.
글 쓰는 지금에 봐도, perl-5.8.5, xorg-6.8.1, python-2.3.4, kde-3.3.1 등 최신의 판(板, version)을 제공하는 배포판은 몇 되지 않는다. 조금 아쉬운 점은 gnome-2.6.1.1이라는 것, 최신은 2.8.0이다.
앞으로 슬랙웨어는 어떻게 될까? 슬랙웨어는 패트릭 볼커딩의 노력이 많이 들어간 작품인데, 그가 없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이 그 일을 맡을까. 하지만 그 만큼 충실히 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사람이 맡았던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맡게 될까? 슬랙웨어가 사라질까?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패트릭 볼커딩에게 개인적으로 병의 쾌유가 있기를, 그리고 슬랙웨어에 좋은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다. 이곳은 늦은 밤이고, 이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여전히 일을 하고, 쉬고, 일어나고, 자고, 빈둥대고 열심히 뛴다.
같은 시간이지만, 그곳은 이른 아침.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는 나는 지금 여기... 감사하면서, 소망한다. 이른 아침에도 - 자고 일어나 공부를 하는 것이어서 "아침부터"라고 해야할 지, 밤을 꼬박 새고 아침이 되어 "아침까지 여전히"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며, '여전히 잘 이겨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꿋꿋한 모습에 감사한다. 힘 들지만 버티고 시험 잘 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의 - 하나뿐이기에 하나라는 수식어는 잘 못 된 것이지만- 시간, 그 안의 서로 다른 공간과 시계. 그리고 우리들.
동물 농장에 대한 독후감을 계획하고 있었다. 개요(outline)을 작성하는데, 소재(subject)를 하나씩 적어가다 보니 꽤 많다. 신경써서 천천히 하고 싶은 말을 다 쓰면, 1만자를 넘을 것 같다. 원래 생각했던 것에 분량을 맞출까, 아니면 나오는 대로 충분히 쓸까..., 그런 생각을 했다.
갑자기 WAIS님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어졌다. ICQ에 접속을 해야겠는데, ICQ client가 없어서 bekrage에 접속하여 micq를 실행했다. WAIS님은 온라인에 없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이 시간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어렸을 때, 어머니는 효자라는 칭찬을 자주 해주셨다. 또 복덩이라는 말도 해주시곤했다. 복덩이라는 말은 요즘도 하신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옛날 시골에서,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불을 때는 집.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때려고 하면 어린 아들이 항상 의자를 갖다 주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구, 우리 효자(孝子). 우리 효자...
어느 날, 그 날도 어머니가 불을 때려고 할 때에 아이가 의자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또 칭찬을 하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효자 또 갖다 줄까?
이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도 참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따뜻한 마음. 아직 그 느낌을 기억한다.
예전에 아궁이에 불을 땔 때에는 높지 않은, 엉덩이를 대고 쪼그려 앉는 의자를 썼다. 높이는 높아야 5~8 centimetres, 엉덩이가 닿을 정도의 좁은 면적, 언뜻 보면 일종의 목침처럼 생겼다.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그리고 이미 시골집에 아궁이가 없어진 때에는 이런 의자도 향수(鄕愁)거리가 된다.
아궁이가 있는 시골집. 한 며칠 거기에서 쉬고 싶다. 촌이 고향인 친구들한테 며칠 부탁을 해볼까...
생일이 다가온다. 선물을 하나 받았다. 편지와 함께 엽서와 전지(剪紙, jian3 zhi3).
엽서는 취향에 맞는 그림이 들어있다. 산, 강, 폭포... 여유롭고 상쾌한 자연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전지는 양손에 검을 들고 멋진 자세를 취한 여인의 모습이다.
고맙다. 고맙다...
엽서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친구들에게 보낼 때 쓰면 되겠고, 전지는 어떻게 쓸까 생각 중이다. 전등갓을 만들고 거기에 붙일까...
좋은 풍경이 있는 엽서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모으지는 않는다. 모아서는 별로 소용을 못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받는 사람이 글과 좋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을 것이다.
사실, 선물을 준 사람의 생일은 바로 내일인데. 생일 축하 편지(e-mail)를 보냈다. 그리고 늦게나마 선물을 보낼까 했는데, 굳이 선물은 필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간소함이 흉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
은근히 의자를 기대했는데, 아니다. 생각이 난 김에 의자를 하나 살까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조금 둘러봤다. 마음에 드는 의자가 좀 있다. 등받이 없는 나무로 된 의자(고등학교 영어시간에 등받이 없는 의자는 stool이라고 배웠다), 다리를 꼬고 앉으면 되게 편할 것 같다. 대단히 세련된 느낌을 받는 이음새 없는 매끈한 의자, 이것을 보면 hi-tech라는 말이 떠오른다.
금요일에 학교에 갈 때, 아는 분 가구점에 들러 의자 구경을 좀 해야겠다. 이번 생일엔 의자를 하나 사야지.
어쩌면 폭력이라는 것으로 주목을 끌려는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BBC의 기사를 보고, 더 중요한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폭력이라는 것이 주의를 끌어 쌀 시장 개방이라는 문제가 흐려졌는 지도 모르지만, 극심한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사를 보는 외국의 시선은 어떨까? 그들은 우리에게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 지 알 수 있을까?
그나저나 어디 광고 없는 뉴스 사이트 좀 있으면 좋겠다(한글로).
전에 네이버에서 블로그 차단한 것에 대해, 근래에 싸이월드에서 사용 제한한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고개를 가로 저어 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것 보면, 음식점이 제일 만만하지 않나 싶다. 들어가면 인사해, 자리 안내해줘, 꾸벅꾸벅 굽실굽실...
IT관련 업체에 불평해서 똑똑하게, 친절하게 대우 받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딸랑 e-mail로 귀하의 요청이 접수 되었습니다
라고 나오고 끝나지 않으면 다행.
어제 음식점에 갔다. 주문한 것은 무슨 스테이크였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하긴 무리지, 음식 이름 기억한다는 것. 지금 추측하건데, 치즈가 들어갔을 것이다. 치즈 좋아해서 아마도 치즈 들어간 무엇을 시켰을 것이다. 아무튼 치즈 무슨 스테이크.
조금 늦게 나왔는데, 한 조각 썰어서 바닥 부분을 보니 조금 두껍게 타 있었다. 앞니로 조금 뜯어 보았는데, 단단했다. 다시 해 달라고 할까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랄랄라. 역시 제 성질 개 못 주는 것이지. 건강 심리학 때에 이것에 대해 많이 다뤘는데, 그래도 바뀔 가능성은 안 보이는 것 같다.
점원에게 조용히 말했다. 점원이 눈치를 조금 보더니 다시 해다 준다고 하면서 탄 음식을 갖고 갔다.
'음, 그래야지...'
다시 나왔는데, 여전히 바닥이 조금 탔네. 에잉... 탄 것 안 먹는데. 아까보단 탄 부분이 훨씬 적고 단단한 부분도 없고 해서 그냥 먹었다. 두번 다시 해 오라고 하자니 마음이 조금 걸렸다. 이 점을 보면 전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고기를 완전히 뒤집어 탄 부분을 긁어 내어서 보여주며 탄 부분 없이 해달라고 상세하게 설명했을... 것... 같다. (라고 글로 써 보니 상당히 성질 더러운 행동으로 보인다.)
불만이 있으면, 불만을 올바르게 표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불평을 잘 하는 것도 - 여기에서 '잘'이란 말은 단지 자주 한다는 것 보다는 생산적으로 행동/표현 하는 것 - 삶을 사는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에서는 "주장행동", "공격행동"이라는 말을 쓴다. 주장행동은 타인의 감정이나 신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는 것이고, 공격행동은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는 것이다. 불만을 올바르게 표출하는 것은 주장행동에 해당하겠다.
이런 말을 자주 쓴다. 싫으면 싫은 티를 내라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잘 못하면 국회의원들 욕만 하지말고, 어떻게 바뀌어야할 지 궁리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확실히 싫다는 표현을 하라는 것이다. 부당한 서비스를 받았으면, 속으로만 기분 나빠 하지 말고, 부당한 서비스를 받은 것이 붍쾌하다고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조금 비겁해 지고 싶다. 불만을 표현하는 것에 쪼오끔, 아주 쪼오끔 지쳤기 때문이다. 벽장에 숨어야지(hide in the closet).
그래. 네이버도 안 쓰고, 네이트도 안 쓰고... 안 쓰니까, 뭐... 조용히 살고 싶어. 큰 업체들과 상대하면 언제나 약자니까. - 라고 생각하기 보단, 좀 더 조직적으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해야한다고 의지를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
그러고 보니, 대전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좀 다른 것 같다. 대전과 충청도 하면, 좀 느긋하고, 양반이고, 어리버리 하고, 계산 잘 못 하고 그런 선입견이 으레 있기 마련인데. 고등학교 황경익 선생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디가서 나 충청도 사람이유~라고 말하면, 대충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예요.
버스를 타는데 한번은 버스가 늦은 적이 있다 - 가 아니고 자주 늦는데, 그 때에는 좀 특별한 일이 있었다 -. 111번을 타고 대전역을 지나 조금 더 갔을 때였다.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탔는데, 그 중 한 아저씨가 불평을 했다.
아니, 버스가 무슨 20분이나 늦어.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대전 사람들은 왜 버스가 늦었는데 불평을 안 해?
듣고 보니 그랬다. 불평하는 것을 보는 경우는 드믈다. 그냥 그러려니... 자신이 받아야할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여 개선을 요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도 옳다. 그런데, 꼭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여하튼 그 상황에서 나도 아무런 불평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 때와 좀 다르다.
대전에서 살면서, - 운동 때문이 아니라 바빠서 - 뛰는 사람을 보는 날은 아마 운수 대통한 날일 것이다. 사람들이 뛰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뛴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걸려 있으면 마구 뛴다. 서울에 갔을 때, 참 편했던 것이 이런 때다. 대전에서는 신호에 맞추어 건너려고 뛰면, 혼자 뛴다. 서울에서는 사람들 여럿이 뛴다. 그래서 덜 민망하다. 하하.
일본은 여전히 북한을 잡아 먹을 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의 근처에서 다른 나라들은 북한을 멀리에 놓고 보고 있는 것 같다.
2년 정도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북한을 방문하고 김정일을 만났을 때의 모습을 TV에서 봤다. 김정일을 향한 고이즈미 준이치의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보는 짐승 같았다.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저자세로 나올 모양이다. 안타깝다.
서로 미움을 만들어서야 안 되겠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불과 반 세기 전, 수 많은 조선인에게 고통을 준 일본에서, 어떻게 그렇게 나올 수 있는가. 그 많은 수의 조선인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태도를 지닐 수 있는가.
일본은 여전히 지난 일에 대해 사죄한다고 말 한다. 하지만 그들(일본인 개개인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집단)의 행동에서 그들이 사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더럽다.
정말 통제 당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알 가치가 없기 때문일까?
BBC, CNN 등 외국의 뉴스에는 있는데, 한국의 뉴스에서는 찾을 수 없다.
통제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왜 통제 당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통제의 결과, 그 통제에 대한 대처를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근래 "동물 농장"을 다시 읽은 탓인 지, 통제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통제라면, 이유는 뻔할 것이다. 지배/소유하고 있는 자에게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뉴스가 한국의 뉴스에 나온다면, 결과는 어떠할까?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기분 좋은 뉴스가 될 지는 모르겠다.
알 가치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 측에서는 핵무기를 만들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런 기사는 무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내에 이런 뉴스가 나올 필요가 없을 것이고.
하지만, 알 가치가 없다고 해서 모두 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알아야 할 것인 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뉴스를 보는 사람이어야할 것이다. 어떤 뉴스가 알려져야할 지, 안 알려져야할 지가 이미 판정되어, 걸러진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통제를 의미하니까.
설마 한국의 뉴스가 이 뉴스를 전혀 몰랐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
소프트웨어를 배포(distribute)하기 위해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를 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 10년전까지는 그랬나보다. MS 윈도우즈 95가 나오고, 인텔(Intel)의 펜티엄(Pentium)이 나오면서, 멀티미디어 PC라는 말이 나오고, CD 롬(rom) 드라이브(drive)가 기본적인 것이 되었을 때부터 CD로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는 것이 당연해진 것 같다.
사실 그 전에도 CD로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크게 대중화 된 것은 IBM 호환 PC에 시디 롬 드라이브를 설치하게 되면서인 것 같다.
매킨토시 같은 경우는 그 전부터 시디 롬 드라이브를 달고 나왔고, 그래서 운영체제 설치할 때에도 시디로 설치했다. 그 당시 IBM 호환 PC 쪽에서는 MS 윈도우즈 3.1 따위를 썼고, 플로피 디스크 열 몇장에 나뉘어 담긴 운영체제를 가슴을 졸이며 설치했다. 혹시라도 플로피 디스크에 오류가 있으면 그건 정말 꽝이었다. 이 점도 매킨토시 사용자에게는 상당한 매력이었다.
그리고 테입 드라이브(tape drive)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상업용 유닉스를 배포할 때에 테입 드라이브를 사용하기도 했다. SCO ODT 같은 경우, 전에 타볼(tarball)에 담겨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써 본 적은 없다.
아직도 플로피 디스크 몇십 장에 나뉘어 담겨있는 예전 유닉스 판(板, release)을 갖고 있다. Sun의 Solaris 2.6인가 하고, 삼보(Trigem)의 TG-UX, SCO ODT 같은 것들. 이 중 삼보 TG-UX는 정말 호기심을 이끄는 녀석이다. 헌데, 감히 건드리지를 못 하겠다. 플로피 디스크 수십 장...
예전에 MS 윈도우즈 3.1이 있었는데, 5.25 인치(inches) 플로피 디스크 12장인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 고등학교 3학년 때, 이용균한테 줬던 것도 기억난다. 어떻게 됐으려나...
플로피 디스크를 요즘도 쓴다.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예를 들면, 응급 복구 디스크 같은 것 만들어야할 때. 특히나 SCO Unix 같은 경우, 응급 복구 디스크가 없으면 말짱 꽝이 된다. 복구하기 정말 어려워진다. 그리고 윈도우즈 NT 계열 운영체제도 그렇고. 보통은 운영체제 설치하고, 적당히 업데이트(update)나 패치(patch) 같은 것 하고, 응급 복구 디스크를 만든다. 그리고 그 플로피 디스크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미지 파일을 시디에 굽는다. 나중에 필요하게 되면 시디에서 꺼내 플로피 디스크에 밀어 넣고 사용한다. 그게 제일 안전한 것 같다.
운영체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주로 잡지를 통해서였다. 잡지 중에서도 "맥마당".WinTel의 반대 진영의 가장 큰 부분은 당연 매킨토시(Macintosh)일 것이다. 그런 매킨토시 관련 정보를 통해 MS 윈도우즈의 세상이 아닌 곳도 보게 되었다. 그게 고등학교 2, 3학년 때.
BeOS도 "맥마당"을 통해 알게 되었고, Unix, OpenStep 같은 것도 "맥마당"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내가 직접 자료를 찾았다.
운영체제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도 얻었다. SCSI, FireWire, USB, 매킨토시의 구조, CPU, 로직 보드... 그런 것들에 대해.
"맥마당"은 나에게 참 큰 역할을 했다.
책과 잡지 등을 통해서 운영체제에 대해 많이 접하게 되었다. 컴퓨터와 관련하여 정보 수집에 소극적이었다면,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단지 MS 윈도우즈만 사용하고 있었을텐데... (오히려 그게 나았을 것이라고 요즘 생각한다. 다시 말해, 유닉스를 접하게 되고 빠져들게 된 것에 조금은 후회된다. 결과를 알았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 결과는 좋지 않다는 뜻.)
그러다가 GNU/Linux를 알게 되었고, 다른 운영체제도 알게 됐다, MacOS, OpenStep, BeOS, NetWare... 1998년 겨울, 수학 능력 시험을 마치고 컴퓨터를 샀다. MS 윈도우즈가 설치 되어 왔는데, 얼마 쓰지 않아 날려 먹었다. GNU/Linux를 설치하려다, 실수를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GNU/Linux를 조금 쓰다가, 프로그램의 세계였던가, 잡지에서 주었던 부록 씨디, SCO OpenServer 5.0.5. 그렇게 OpenServer를 만나게 되었다. 네트웍이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X window system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OpenServer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강건(robust)하다고 할까? 사용할 수록, 다른 운영체제와 비교할 수록 단점이 많이 보여 아쉽지만, 정말 좋은 운영체제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유닉스를 접하게 되었다.
1999년 여름 방학 때까지 정말 유닉스에 흠뻑 빠져 있었다. 여름 방학 한 달을 유닉스와 함께 지내면서 유닉스를 참 많이 익혔다. 그리고 친숙해졌다. 아마 그 시기가 유닉스 실력을 기르는 데에 나에게 참 중요했던 것 같다.
BeOS는 "맥마당"을 통해 알고 있다가, 1999년 여름에 - 구입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 하는 것이 아쉽지만 - 입수 했다. 아직도 그 상황을 기억한다. BeOS 관련 웹 사이트에 (아마도 BeKrAge 이전의 웹 보드) 있는 글을 보고, 편지를 썼고, 알고 보니 충남대학교 선배여서 만나서 받았다. 통계학과 대학원생이었는데, 이름이 한재룡이라는 분.
그 때 게시판에 크게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땀이 난다. 하하.
그 분은 아직도 BeOS를 사용하고 있을까...
Macintosh를 접하게 된 것은 당연 "맥마당"을 통해서였다. 사실 그 전에 고등학교 1학년 때에, "파워맥 들여다보기(원제: PowerMac Book!)"이라는 책을 사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 "컴마을"이라는 컴퓨터 매장에서 주었던 팜플렛에 매킨토시가 있어서 항상 관심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6학년 이후 꾸준히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기억 하게 된 것인데, 중학교 때에는 "전자 신문"을 꾸준히 봤다.
그러다가 "맥마당"에서 충남대학교에 "맥스페이스(MacSpace)"라는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충남대학교에 가 맥스페이스에 가입하게 되었다. 사실, 충남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매킨토시를 접하게 되었다.
OS/2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도스처럼 볼륨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고 파일 시스템의 계층 체계를 여러개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NetWare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닉스처럼 파일 시스템에 하나의 계층 체계를 하나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OS/2는 관심이 있어 하이텔의 오에스투 동호회에 자주 들렀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다가 - 아마도 - 그 때 시삽이었던 악필(akpil)님을 만나 정보를 구했다. 그러다가 안재철님도 OS/2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고 관심이 더 증가 되었다. 이후에 양파(onion)님과 만나서도 OS/2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고, 밤 늦게 OS/2를 가지고 노는 양파님을 보면서 신기해했던 것도 기억난다.
넷웨어(NetWare)는 별로 손 대고 싶지 않았는데, 친구가 자기네 서버를 좀 봐달라고 해서 매뉴얼 보고 공부하면서 조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알지는 못 하고, 기본적인 관리 정도만 할 수 있다. NetWare도 좋은 것 같긴한데, 역시 서버로만 쓰기에 좋은 것 같다 - 라고 말은 하지만, 유닉스와 비교하면 심각하게 불편하고 느린 서버 운영체제라는 생각이 든다 -.
그래도 가끔 넷웨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곤 한다. 또 언제 손을 대게 될 지 모르니까.
내가 첫번째로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것은 - 심각하게 충격적이지만 - MS 워드(Word) 2000이다. 그것도 2003년에. 그 이전에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입수(!?)해서 사용했었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거의 유닉스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GNU/Linux나 NetBSD, FreeBSD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픈소스(OpenSource) 쪽을 접하게 되면서 공개된 프로그램만 거의 썼다.
MS 워드 2000은... 학교 다니면서 보고서를 쓰기 위해 샀다. 그 전에는 LaTeX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곤 했었다. 보통은 텍스트 편집기로 작성을 하고 학교나 윈도우즈가 설치된 다른 컴퓨터에서 편집을 해서 최종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 과정은 상당히 효율적이긴 했지만, 다른 컴퓨터를 이용해야한다는 점이 참 불편했다. LaTeX으로 작업하는 것은 중노동이었고.
사실 MS 워드 2000을 살 때엔 4학년 1학기였기 때문에 별로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2500원이라는 싼 가격에 마음이 홀라당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하하. 혹시 MS Windows의 가격이 몇천원 대로 내려가면, 난 윈도우즈로 전향할 지도 모른다. 하하.
근래엔 MS Windows NT 4 Workstation을 구입할까 생각 중이다. 한 5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MS에서 더 이상 지원하지 않고, 사용하기에 많이 불편하지만, 싸니까... 음, 누가 자기 쓰던 것 준다고 그랬는데,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MS 윈도우즈를 살 날이 오지 않길 바라고 있다. WAIS님이 맥을 버리고 유닉스로 전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많이 놀랐다. 내가 윈도우즈로 전향하게 된다면 내가 많이 놀랄 것 같다. 하하.
IP은 보호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하지 않는가. 대체로 그런 이유다. 그래서 공개된(opensource) 소프트웨어를 주로 사용한다.
리챠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조사(vendor)에게 소프트웨어를 공개할 것을 주장하자고 하는 것은 별로 동의 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공개는(opensource는) 미덕(美德)이지, 의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고병권이 다니던 컴퓨터 학원에 함께 다니게 되었다. 사실 음악을 못 했던 터라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싶어하셨는데, 그 보다는 컴퓨터 학원이 좋았다. 지금에 와서는 후회한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야했는데, 컴퓨터 따위는 그냥 모르고 살았어야했는데... 컴퓨터를 몰랐다면 조금 더 사람답게 살지 않았을가? 呵呵.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들어가서 GW-BASIC을 배웠는데,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모르긴 했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영어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알파벳(alphabet) 정도는 알고 있었고, 단어를 보면 알파벳의 음가를 가지고 적당히 발음을 추측해 낼 수 있었다.
컴퓨터 학원에서 나의 진도는 대단히 빨랐다. 6개월을 다녔는데, 나의 진도가 2년을 다닌 같은 반 친구와 같아졌을 정도니까. 그리고 2년 동안 학원을 다닌 친구들과 함께 자격증 시험을 봤다. 그 때 시험을 봤던 기억도 생생하다.
일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학원에 모여 시내 버스를 탔다. 나는 버스의 맨 앞쪽에 앉아 있었는데, 선생님이 내릴 때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한참 가서 내릴 때가 됐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내리라는 신호를 전하라고 했다. 문제는 내 뒤에 녀석이 나에게 내리라는 신호를 안 해주고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내린 것을 알아채고 겁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시험 보기 전에 선생님이 숫자 0을 쓸 때에 0에 사선을 그어 영문자 O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라고 지시 했던 것, 시험을 보는데,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쓴 글씨가 모두 번져서 과연 점수가 잘 나올까 걱정했던 것, 시험 보고 나와 다른 친구들은 시험 못 봤다고 그러는데, 나만 한개 틀렸다고 하자 다들 놀랐던 기억난다. 정확하지 모르겠지만,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나와 다른 사람 한명 뿐이었다.
어러가지 기억이 있다.
자기 전, 세상 사람 모두 행복하길 바라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을 뜬다. 그러면 세상 사람 모두 정말 행복해질 것 같다.
힘든 사람, 그래서 주위에 행복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소리 내어 말 해 본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저는 주위에 행복한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래서/그리고 서로를 생각한다.
불확신으로 인해 약해지더라도 이루어 질대로 이루어지리라.
단식 투쟁 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쌀을 사오는 사람. 밥을 먹으며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 사랑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 꿈을 꾸며 현실을 보는 사람. 달리기를 하다 넘어져 구르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진 출처: 퀵타임 라이브 공작단
연 날리는 사진이 아니고, 이 사진이라 조금 당황했을까.
사진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동일시를 바탕으로한 연민이었을 것 같다.
묶여 있는 강아지, 나 같다. 묶여 있는...
교수가 뒤통수 쳤네. ^^;
너무 실망하지마. 그런 경우라면, 다른 학생들도 예상 못 하기는 마찬가지잖아.
네가 공부한 것이 시험에 안 나왔다고 해서 네가 공부한 것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번 시험이 예상 못 한 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그렇게 나왔다면 어느 학교 어느 학생이든
제대로 못 풀었을거야.
그렇지?
취업 걱정...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희망차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 네가 들어갈 적당한 회사가 적어도 하나는 있지 않을까? :-) 하나면 되잖아. 여러 회사에 취업할 것도 아니고. 너에게 딱 맞는, 널 환영할 좋은 회사가 있을거야. 그 때가 돼 보면 알겠지.
전에 이런 얘기 하고 싶었는데, 위에 얘기 나오니까 생각이 난다.
붓다가 수행을 하고 있었어.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데, "마라"라는 신이 나타났어. 마라는
인도 문화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라고 나오더라. 마라는 붓다가 얼마나 훌륭한 지,
진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대. 그래서 붓다가 수행을 하고 있는데, 방해를 한
거야. 일종의 시험이지. 그런데, 붓다가 그런 방해에 전혀 게의치 않고 올바르게 수행을
계속했어. 그랬더니 마라가 자기가 졌다고 그랬어. 그러자 붓다가 하는 말이...
...자신은 열반(nirvana)의 세계로 가는 대신, 이 세상에서 이 몸뚱이와 함께, 바리때(불교 수행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쓰는 그릇) 하나와 자기 몸을 둘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을받았다
고 말해.
이 세상에서 산다는 그런 것인 지도 몰라. 누구나 몸이 있고, 그 몸 하나 놓을 공간을 누구나받았고, 먹고 살 수 있게 주어졌고, 살 수 있는 동안 살게 되어있는...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당당히" 먹고 살고, 세상 어디에 몸을 두고 살 수 있는 것 같아.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당당히 계속
살아가도 되는 것 같아.
세상은 너를 기다리지 않는다
라고 들었다면, 이렇게 말해봐. 나도 세상에 나왔고, 당당히 이 세상에 살아가도록 되어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또 이런 생각도 들어. 살아 있는 사람이 갖출 가장 최소한의 것은
이 몸을 둘 조그만 공간, 먹고 살기 위한 조금의 소유라고.
몸을 둘 공간은 뺏기기 힘들지... 누가 나를 죽이지 않는 한. 이것에 대해 욕심을 부려 커다란
집을 사고 그러지만, 그래도 결국 차지하는 공간은 자기 몸 크기 만큼 밖에 안 되지.
먹고 살기 위해 바리때 하나만 들고 살 수는 없겠지만, 큰 회사의 중요한 일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결국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호화는 거기에서 거기일 뿐이지.
그래도 욕심을 조금 부린다면 나한테 네가 있다는 것... 다른 욕심 다 버려도 이것은 좀
끝까지 잡고 싶네.
이 넓은 세상에 많은 공간이 있지만, 이 한 몸으로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단지 내 몸 크기
밖에 안 되네. 마찬가지로 세상엔 많은 사람이 있지만, 내 마음 가는 사람은 A 하나...
사랑하는 A. 기운 내고, 지금 힘든 시기 잘 넘기길 바랄게.
오늘도 힘 차게 A를 기다릴 오빠가...
일어나, '또 아침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오늘도 많은 일이 일어나겠지...'
읽고, 조금 갈등했다. '전화할까? 공부하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조금 답답하다. 뭔가 가슴을 누르는 느낌. 그래서 이완하려고 시도했다. 훨씬 나아졌다.
"사노라면"이 듣고 싶어졌다.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가슴을 쫙 펴라
그래, 젊다. 힘을 내자.
사노라면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날도 날이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짝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다해도
고운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짝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그레이스케일(greyscale)을 좋아한다. 다채로운 것보다 밋밋하지만 매끄러운
그레이스케일이 좋다. 오랜만에 스크린샷을 찍었다.
스크린샷 2004-11-07 이 스크린샷은 컬러 스크린을 캡쳐한 것을 그레이스케일로 변환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레이스케일인 것을 그대로 캡쳐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레이스케일이 좋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디 웹사이트 좀 봐 줄래? 거기 보면 왼쪽에 빨간 버튼이 있어. 그것 누르고...
저기, 빨간 버튼을 못 찾겠거든요. 그 위에 글씨 쓰여 있는
것이나 모양이나 그런 것으로 알려주실래요?
또 이런 일도 있다.
가을 풍경을 찍었어요. 단풍이 정말 빨갛네요. 색이 정말
좋네요. 이 그림 보면서 하루 잘 보내세요.
아, 예. 고마워요. 있다가 볼게요. ^^;
사진을 보기 위해 16 bit pseudocolor의 X 또는 24 bit truecolor의 X를 하나 더
실행시킨다. 그리고 그림을 보고 잠시 즐거워 한 뒤 X를 종료한다. 원래의 8 bit
greyscale로 돌아온다.
하지만 8 bit greyscale으로 돌아와서 그림을 다시 볼 때도 있다.
컬러풀(colourful)한 그림보다 greyscale의 매끄러운 그림이 더 보기 좋을 때도
있어서이다.
가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greyscale이 좋다.
1999년 여름 쯤이었던 것 같다. 동아리방(MacSpace)에 있는데, 누가 찾아왔다,
3학생회관 2층에 있는 충남대 영자(英字, English) 신문사에서. 영자 신문사에 있는
매킨토시(Macintosh)에 문제가 있다고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96학번 이주영 선배가
함께 있었고, 역시 주영 선배가 처리할 거리였다. 선배들 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던
때였고 좀 더 배우고 싶었터라 주영 선배를 따라갔다.
영자 신문사에서 온 사람은 공대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축이나 뭐 그런
것. 이후에 길에서 여러번 봤던 것도 기억난다.
영자 신문사에 갔더니 Power Macintosh 6100 AV가 있었다. 그리고 21 인치(inches)
그레이스케일의 CRT 모니터가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그레이스케일의 모니터를
봤다. - 내가 하는 것처럼 - 컬러 모니터에 그레이스케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레이스케일만 표시할 수 있는 모니터였다. 그리고 해상도는 최대 800x600.
소니 제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꽤 인상적이었다. 21 인치의 커다란 화면에
800x600의 해상도, 256 greyscale. 아이콘이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했던 것도.
컬러를 256 이상으로 올리려고 해도 안 됐다. MacOS classic(MacOS 10 이전
판)에서는 256 greyscale이 기본으로 지원된다. 약간의 트릭(trick)을 쓰면 MacOS
10에서도 256 greyscale을 쓸 수 있다.
파일 시스템(file system) 점검하고, Desktop DB 재형성하고 PRAM 소거하고 이것
저것 살피고 나서 문제 해결했던 것이 기억난다.
찾아보니 색(色)과 결정 못하는 문제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무채색의 장면을 더
좋아하는 것이 정서적인 것을 억압하는 것과 관련된 것 같고 이것은 결정을 못하는
문제로 표출되는 것 같다.
이것의 이면에는 무엇인가 있을 것 같은데, 살펴 보고 싶지가 않다. 역시 억압하고
있는 것인가보다.
어제도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살펴 보며 40분을 보냈다. 결국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물건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살지 말 지, 산다면 사야할
이유가 있는 지, 목적이 있는 지, 살 수 있는 지... 과연 정말 사고 싶은 것인지
한참 생각하다 포기하기를 40여분. 상점에서 나와 집에 가는 길에 알 수 없는
허무함을 느꼈다.
시간을 내어서 좀 더 확실히 탐색해 봐야겠다. 빨리 수정해야지.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할 지 몰라서 대충 적어봤다. 그런데 영 어색하다. 이름만 봐서는 뭐라고 알기 어렵다.
Firebird, Firefox가 아닌 Mozilla에서 Sidebar를 이용하는 경우에만 유용하다. 더 이상 Sidebar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Mozilla의 구(舊) 판(版, version)을 제공하는 운영체제가 많으니까...
"RSS Feed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RSS Feed를 Mozilla Sidebar에 설치해 주는 프로그램" 정도가 적당한 설명인데, 이것을 잘 드러나게 이름을 지으려니 말이 막힌다.
perl로 만들었다. 예전 판(版, version)은 XML::Parser 모듈을 쓰고 노가다로 출력을 만들어 냈는데, 새로운 판은 XML::RSS 모듈을 쓴다. 훨씬 깔끔하다. 모듈이 있어 그나마 쉬운 프로그래밍...? 좀 더 밝게, 활기차게 말을 꾸밀 순 없나? 더 좋은 말을 갖다 붙이고 싶긴한데, 그러면 거짓말이 너무 크다.
아침에 바빴지만, 이후는 여유로웠다. 하지만 불안했다. 딱히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 불안했다. 바로 이럴 때에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
코드를 살펴보고, 책을 보고, 단 과자를 먹어보고, 음악을 들어보고... 그랬는데, 자꾸 손이 컴퓨터로 간다. 확인을 한다. 또 확인을 한다... 그러다 이내 또 확인을 한다. 웹 브라우저가 문제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손수 확인해본다.
없다.다만 한 글자라도 좋을텐데. 단지 글로 잘 있다는 것만 전해줘도 좋은데... 뭘하고 있을까? 어디 있을까?
기대는 기다림을 만들까...
기다리고 있을까? 또한 기다리면서 그런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쓰고 보니, 생략이 너무 많아서 당최 남들은 못 알아볼 그런 글을 써놓고 말았다.
좀처럼 TV를 보지 않는데, 지나치면서 들었다. 한나라당에서 대전, 충청 지역 의원들에 대해 탈당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이 분열인가? 분열은 어떻게든 올바른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텐데...
그렇게 우리를 다시 작은 우리와 너희로 나누고 다시 본격적인 싸움을 하겠다는 것이겠지.
조금만 무관심해 지면 조금 더 여유로워지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좋지는 않을 것이다. 완전히, 떳떳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또한 등돌린 2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