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몇 호선인지 모르겠는데, 계단에 이런 문구가 있다. "문화인은 좌측통행" (맞나? 사진을 찍어두려고 했는데 매번 잊어버린다.)
두가지 점에서 안 좋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그 말 뜻에 문화인은 좌측통행을 하게 되어있으니 네가 문화인이라면 너도 좌측통행을 하라는 은근한 위협이 들어있다. 좌측통행을 하지 않는다면 문화인이 아니라고 비난할 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우물안 개구리들이 쓰는 표현 아닌가. 한국 사람들끼리 우리가 쓰는 말을 국어라고 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도 여전히 국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측통행을 하는 외국인이 와서 그 문구를 보면 어떨까? 그냥 단순히 "좌측통행"이라고 쓰면 될 것을... 좌측통행이라는 문구를 아무도 지키지 않아서 비아냥 거리며 기분을 거슬려 왼쪽으로 가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또 하나는, 공학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안 좋아보인다. 그 메시지가 무슨 뜻일까하고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메시지는 효율적인 메시지가 못 된다. 문화인은 좌측통행이라는 말은 몇번의 논리적인 판단 후에 최종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인 좌측으로 가라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런 경우, 메시지는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어 어떻게 해야할 지 판단하게 하거나, 직접적으로 지시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좌측으로 걷고 있다"라고 현재 상황을 알려주면, 그 상황을 전달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걸리적 거리지 않게 좌측으로 걸어야겠다는 판단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상황에서는 그런 판단조차 번거러운 것이다. 단지 "좌측으로 통행하시오"라는 직접적인 지시가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요즘 정말 글 쓰기가 뜸하다. 깊이 생각하는 것 보다는 자유롭게 느끼는 것에 더 의존하고 있어서일 것 같다.
매일 매일 일기 쓰려고 마음 먹은 것도 어느 새 조금 흐릿해졌다. 그래도 간신히 그런 기억이 남아 있어 오늘도 이렇게 일기를 쓰려고 고심하고 있다. 요 얼마간은 일기 쓰려고 책상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만 하다 그만 두곤 했는데... 사실 쓰고 싶은 것은 지금 쓰는 것처럼 사소한 것이 아닌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루를 건너띄지 않아야 내일 또 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제 일기를 한 반정도 쓰다가 저장하고 중지했다. 한밤 중에 난방 연료가 떨어져 일기 쓰다 말고 기름통 들고 밖으로 향했다. 이것에 대해서도 쓰면 좀 주절주절 너저분한 이야기를 늘어 놓을 것 같은데, 별로 재미있는, 유익한 이야기도 안 될 것 같다.
자, 이렇게 두 단락 쓰고 나니 뭘 써야할 지 모르겠다. 하루 동안 깨어 있으면서 '있다가 이것에 대해서 써야지'라고 생각해둔게 대여섯개 되는 것 같은데 막상 쓰려니 내키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소소한 이야기나 쓰고, 단지 일기를 쓰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며, 기쁜 마음으로 잠을 자려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에는 흐리긴 했지만 비나 눈이 오지는 않았다. 도서관에서 한참 공부하는데 전화가 왔다. 형이 전화를 했는데, 심심하니까 빨리 오라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함께 밥 먹자는 것으로 들렸다. 전화 받기 위해 열람실 밖으로 나와야했는데, 전화 받으면서 창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나도 몰래 전화에 대고 "젠장"이라고 말했다. 우산도 안 가지고 나왔는데... 좀 더 공부하다가 집에 가려고 나와보니 비가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였더라면 돌아오면서 흠뻑 젖었을텐데.
사실 도서관에서 막 나올 때에는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고 있었다. 곧 바람이 많이 차가워지면서 눈으로 바뀌었지만. 도서관 현관에서 내리는 것을 한 몇분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아가씨가 현관으로 나오더니 가방에서 천천히 우산을 꺼냈다. 그 모습을 천천히 보고 있었는데, 왠지 가는 길이 같은 방향일 것 같았다. 그래서 우산을 함께 쓰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았다. 예전엔 우산도 잘 얻어쓰곤 했는데... 그리곤 그냥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전에 대전역에 밤 늦게 지나가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놀다가라는 말을 하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여자친구가 한 말(?)이... "오빠, 그런 곳에서 놀면 안 돼. ^^;" 문자 메시지였는지, 전자 우편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디 저장은 해놨을텐데... 그 말 듣고 웃음도 나오면서 괜히 기분이 좋았었는데...
이 이야기 하면, "오빠, 다른 여자랑 우산 쓰고 가면 안 돼. ^^;"라고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Windows 2000을 Windows XP로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갔다 돌아왔는데, 누나가 컴퓨터를 쓰고 있다. 큰 파일 좀 받으려고 다운로드 걸어놓고 스크린 잠그지 않고 나갔다 왔는데, 누나가 내 로그인 세션을 종료하지 않고 그냥 쓰고 있다. 순간 깜짝 놀랐다. 메신져라도 켜 놓고 나갔더라면 누나가 내 친구들하고 수다 떨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냥 항상 유닉스를 쓰고 아예 윈도우즈로 시동을 안 하던지, 윈도우즈 XP를 설치하여 사용자 전환을 해서 쓰도록 하든지 해야겠다. 그리고 언제나 자리를 비울 때에는 스크린을 잠궈 놓고 나가야지... 휴우...
이모네 집에서 가져온 초콜릿... 하나를 다 먹어버렸다. 한 22:00 쯤 됐는데, 전화를 하려고 전화기를 들고 생각해보니, 구입한 전화 카드 다 쓰지 않았던가! 빌어먹을! 월요일에 재깍 구입해야지. 젠장할... 전화기를 새로 사도 말썽이다. 예전 전화기는 문자 메시지 보낼 때 전화번호 제한 없었는데, 새로 산 녀석은 신제품이면서도 제한이 있고. 배터리 사용시간은 더 짧은 것 같고, 벨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단음이 없는 것인지... 젠장, 빌어먹을... 이 두가지 말고 내가 글에 쓰는 욕 같은 것 더 없나? 있으면 한바가지 쏟아 내고 싶은데.
아무튼 기분이 이상해졌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산에 가서 똥이 마려워 어떻게 일을 보나 궁리하다가 간신히 화장실을 찾았는데, 겨울이라고 문이 잠겨 있는 상황 정도? 좌절 120%. 으, 썅... 확, 그냥... 아우...
어머니 전화기로 문자 보내고 그러고 잠시 서 있었는데, 머리 속이 멍하면서 무언가 부족한 느낌, 공허한 느낌 한 가득. 신경질이 막 나면서 뭔가 먹고 싶어졌다. 갑자기 생각 난게, 가방에 넣어 두었던 초콜릿!!! 아싸아~...
사촌 동생 둘이 독일에 갔다 오면서 사온 것이라면서 주었는데, 그 집에서 하나 다 먹었고, 집에 갈 때에 하나 더 주었던 것을 가방에 넣었던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초콜릿 한개를 다 먹어버렸다. 꽤 큰 것인데... 게다가 맛도 되게 진해서 먹고 나니 혀가 좀 쓴 것 같았다. 아무튼 초콜릿 한개를 다 먹고 그러고도 기분이 석연치 않았는지 상점에 가서 아이들 좋아하는 과자를 좀 사다가 우걱우걱 다 씹어 먹었다. 그렇게 뭔가 위로 같지 않은, 자기에 대한 난폭한 행위처럼 보이는, 그런 짓을 하고서야 그냥 보통 때로 돌아온 것 같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프로이트(S. Freud)가 설명하는 구강기 고착(oral fixation)에 해당하는 것 같다. 구강기적 성격이라고 말하고 보니 정말 내가 구강기 고착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에휴, 아무튼...
그리고 나서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초콜릿일까? 초콜릿은 한국에도 많은데. Burnhard님한테 물어봤다, 독일에 초콜릿이 유명하냐고. 아니라고 한다. 초콜릿은 오히려 스위스에서 유명하고, 프랑스의 한 제품도 유명하다고 한다. 생각난 김에, 지난 번에 만났을 때에 왜 초콜릿을 선물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단 것 좋아한다고 해서 그랬다고 한다. 역시 각각의 사건들이 별 이유 없이 우연히 비슷하게 일어난 것 뿐이었다.
예전에 공업 시간에 독일의 철강 제품, 예를 들면 칼이나 그런 것이 좋다고 그랬는데... 나중에 독일에 가면 부엌에서 쓸 칼 좀 사올까. 무기로 쓰일 수 있어서 갖고 올 때에 안 좋게 보이지 않을까. -_-;
사람들한테 연락이 많이 왔다, 하루 동안. 아마도 일년에 받을 전체 양을 하루에 다 받은 것 같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왜 이리 밉지. 캬아오, 여자친구 자랑은 하지 말란 말야! (반은 제정신이 아님) 오늘 같이 춥고, 눈 오고, 기분 안 좋은 날은 좀 건드리지 마시지?
좀 좋은 날 불러서 만나면 훨씬 더 좋을텐데. 에휴, 피곤한 날이다.
싸이 월드 가입을 해야겠는데, 가입 하기 전에 약관을 읽어보려는데, 보통 긴게 아니다. 애매 모호한 표현도 많고, 나중에 이것은 이렇다라고 억지 부리면 심장도 뽑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가입을 해야하나... 친구들이 1촌 맺자고 그런다. 싸이 안한다고 대답한다. 친구들이 놀란다. 내가 무슨 컴맹이냐? 원시인 쳐다 보듯이 보지 말란 말이닷! 나도 도토리로 선물 사서 주고 싶은데... *울음* 으앙...
아무 생각 없이 일기에 주절주절 글자를 하나하나 적어본다. 깊은 생각 같은 것은 담겨있지 않은, 주제나 감상 따위도 없는 그런 글을 길게 주욱 적었다. 차라리 안 쓰는게 나을 이런 글을...
쓰고 보니, 꽤 장난에 가깝다.
아무튼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이제 생각 좀 하면서 살자.
직업 상담 심리학(vocation counseling)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은 직업 심리 검사 부분을 공부했다. 2학년 때 발달 심리학에서 배웠던 것들이 꽤 많았나보다. 그 때 배웠던 것들이 새록새록 기억났다. 그 때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좀 더 열심해 했다면 장휘숙 교수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덜 할텐데. 후후.
다음 장은 직무 분석과 관련된 것이다. 직무 분석부터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전부터 관심이 있던 부분이었던 터라. 아마도 산업 및 조직 심리학에서 배운 것이 또 나올 것 같은데, 산업 및 조직 심리학 시간에 엉성하게 공부해서 다시 한번 공부할 기회도 필요했는데 잘 된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은 공부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져 아쉽다는 것과 예전에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아쉽다는 것이다.
웹 서비스를 하나 준비 중이다. 덕분에 DB를 하나 설계해야겠는데, 이것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전에 DB 공부도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 보니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전문 DB 관리자도 아니고, DB 설계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라 잊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욕심일까, 잊어버린다는 것은 너무 싫다.
제프 라스킨(Jef Raskin)이 또 뭔가 하나보다. 미화 200만 달러를 받고 시작을 하나본데, 액수가 큰 것을 보니 - 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큰 것 같다 - 그만큼 대단한 것일 것 같다. 하긴 돈이 아니더라도 제프 라스킨이 하는 것이라 관심이 있다.
연락처(? contact list)를 보니 한국식 이름도 보인다. "김한훼"일까? Hanhwe Kim이라고 쓰여있는데... "한희"라는 이름일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 규정대로 읽으면 한훼이다.
아무튼,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한국 사람이 있다는게 좀 신기하다.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도 더 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 HID(Human Interface Design) 같은 것에 대해.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것부터 착실히 해야겠다. 그리고 그러면서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마음을 늦추지 말자.
짧게 쓰면... 질투나 분노 같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인지적으로는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왜 이러는 지는 모른다. 인지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정서... 바로 그 상황에서 그렇다. 그리고 이런 상태인 자기를 지각하고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러지... 참 바보 같다.
근래 3주 정도 글 쓰기가 뜸하다. 혹시... 외롭지 않은 탓일까?
위기감을 느낀다. 이러다 글 쓰는 것에 정말 게을러지면 어떡하지? 그러면서도 이번 글은 짧다.
왜 사냐고 물었다. 곧바로 대답했다. 이전에 답을 정해 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있기 때문에, 죽지 못하기 때문에 산다. 낳아졌기 때문에 생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산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생명은 이미 주어진 것이고, 그 삶을 살면서 어떻게 사느냐는 나에게 달린 것이다.
사실 왜 사느냐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고 묻는 것이 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에 가끔은 반기를 든다. 사람들이 생명의 고귀함, 인간의 존엄성, 사랑(인간애)의 숭고함 등을 이야기할 때에 특히 그렇다. 사람들은 말한다. 생명은 어느 것이든 소중하다고,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더 존엄하다고, 인간은 축복 받고 있으며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를 때에도 이미 사랑 받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의심한다. 정말 그렇다면, 왜 어떤 생물은 그 생명의 소중함이 함부로 다루어지고 있는가? 왜 양계장의 닭들은 대량으로 갇혀 사육되고 도축되는가?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면 왜 어떤 인간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가? 끌려가 고문 받고 힘에 억압되어 종처럼 굽실 거리는 사람은 왜 그러한가? 사랑 받는 것이 천부적인 것이라면 왜 어떤 사람은 여전히 외로운가? 사랑이 숭고하다면 왜 어떤 이의 사랑은 서로를 해치는가?
이런 생각은 선입견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무너뜨리고 다시 만들어야했다. 어느 상황에도 절대적인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라는 것, 평등이라는 것은 이상일 뿐 반드시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바탕에 두게 되었다. 현실이 아니고 이상이기에 그것을 향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명의 소중함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그것을 상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존엄은 인간이 갖고 있는 편견이며 우리의 생각은 좀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으며 동물이 생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존중해야한다는 생각이 인간에게도 적용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인간 자신에게 더 가까이에 있는 종이라는 이유로 더욱 관심과 배려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은 낮춰지고 더 보편적인 생명에 대한 존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더 확장되어 생명에 그치지 않고, 무생물을 포함하여 생태에 대한 존중으로 바뀌었다. 또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과 같은 신봉은 버렸고, 다만 인간이 인간을 위해 - 자신을 위해, 타인을 위해 -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높아져만 있던 신념들은 점점 더 낮아져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예외적인 실례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생명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가?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가? 그렇게 기존의 신념들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위에 하나하나 가치를 쌓아가게 되었다. 인간은, 생명은 근본적으로 외롭고 약하고 불안정한 것인데,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적어도 가장 밑바닥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의 존중을, 사랑을 받고 있는 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여 점점 더 낮아지고, 그 위에 소박하고 초라한 만족을 조금씩 쌓아 나름대로의 가치를 만들어 온 20여년의 시간... 그러면서 몸에 익은 것이 서러움인가보다.
멀리서 그리고 귀 옆에서 그 말이 들렸을 때에, 눈 옆으로 흐르는 것을 미처 막지 못했다. 계속 흘러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었을 때에 그제서야 고마움에, 서러움에 마음이 아픈 것을 느꼈다.
그래도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 사랑...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부정(否定)해 가며 새로 쌓은 가치... 그리고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만드는 것, 사랑.
상처에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그 반창고는 더러운 것이었다. 반창고를 떼고 약을 발랐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는가. 이제 다시 반창고를 붙였다.
그간 많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다. 유학과 불교를 공부하면서 훨씬 더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전에 갖고 있던 편견을 더 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낀 외로움을 통해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많이 너그러워지고 더 많이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려고 노력해 왔으니까...
주위 사람들과 접하면서 내가 꽤나 안정적이라고, 포용력이 있다고 느꼈다.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해주기도 하니까.
헌데 전혀 아닌 지도 모르겠다. 혹은 A에게만 아닌 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갈 수록 접하면 접할 수록 내가 A보다 더 불안정하다고 느껴진다. 눈을 뜨고 아무렇지 않게 고요하다가도 A를 생각하면 정신의 어느 구석에 꾹꾹 눌려있던 서러움이 스믈스믈 기어나와 스르륵 눈을 감게 만들기라도 하는 것일까? A는 그만큼 다른 어떤 사람과도 다른... 특별하다.
하지만 내 안에서 느껴지는 서러움 보다 더 서러운 것은 A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 같은 것이다. 타지에서 혼자 공부한다는 것, 그 생각만으로도 외로움에 힘이 빠진다. 그리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야기가 하나씩 들려올 때에 마치 내 어깨가 A의 것이었던 것처럼 축 처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그래서인 지도 모르겠다. A의 이야기가 내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아직 그 일로 힘들어 애태워 본 적이 없으니까. A에게 그 일들은 이미 일어났고, 힘들었고, 익숙해진 일이지만... 나에게는 들려오는 그 순간 생생하게 느껴지는 지금의 일이니까.
바보 같이 바보에게 묻는다. '우린 왜 멀리 있지?'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왜라는 것은 대답이 없는 것이니까. 단지 머리카락이 다시 젖는다. 머리카락이 젖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젖는 소리는 서글프니까.
국제문자메시지라는 것... 알고는 있었지만 써볼 생각도 해보지 않았었는데, 오늘 드디어 써 봤다. 뭐 가격은 그렇다쳐도 이거 왠지 화가 난다. 뭐 나에게 문제이긴 한 것인데,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데이콤에서 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002 + 국제 전화 코드 + 전화 번호인데, 이렇게 되면 전화번호가 14자리도 불사한다. 문제는 내 전화기가 그렇게 긴 전화번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얼마 전에 새로 산 전화기인데 옛날 전화기는 되고 새로 나온 전화기는 안 된다니, 우습다. 하긴 010 번호가 나왔을 때에 옛날 전화기는 문제 없었지만 그 때 새로 나온 전화기는 010을 전화번호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었지...
날이 밝으면 LGT에 전화해서 문의해야겠다. 전화기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되면 좋겠는데.. 제발...
예전에 ICQ SMS 서비스가 sprint도 지원했던 것 같은데 지금 찾아보니 전 세계 8개 통신사 밖에 지원되지 않는다. 아마 그만큼 ICQ의 세력이 약해진 것이겠지. 한국에서는 nate에서 서비스하는 "네이트 온"을 이옹하면 되니까 외국에서도 한국으로 문자 메시지 보내기 쉬운데, 외국은 어떤 지 모르겠다.
한국에 surem이라는 업체에서 국제문자메시지를 서비스하는데, 이걸 MSN이 손 잡고 함께 서비스하나보다. surem을 이용하고 싶은데(그럼 전화요금 청구서에 국제전화요금 항목이 안 나오니까, 그리고 요금도 데이콤 보다 싸고), MSN이 꼴 보기 싫어 망설인다.
음... 어쩐담.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그 때에 많은 시를 배웠으니까. 김춘수라는 사람은 잘 알지 못하지만 "꽃"은 참 자세히도 배웠다. 그리고 그 시에 대해, 그 시 자체에 대해 상당히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문학 시간, 그 시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그 시를 생각하며 떠올렸던 많은 것들.
그리고 근래에 와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된 그 시.
김춘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아마도 한 달쯤 전에. 그런데 이제서야 글을 쓴다). 안타깝다. 김춘수라는 시인은 그가 꽃이라는 시로만 알려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것에는 까막 눈인 나에게 꽃이라는 시 말고 다른 시로 알려지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라지다니...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시집을 사러 서점에 갔다. 그의 시집이 없었다. 학교 근처의 조그만한, 고작 수험서나 파는 서점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꼭 김춘수의 다른 시를 읽어보아야겠다.
오늘따라 그 시가 눈에 선하다.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렇게 저렇게 뭔가 계속 하다 보니 하루가 갔다. 그리고 밤이 깊고, 잠 잘 생각을 한다. 내일 또 살아야지.
2002년... 퇴근을 하고 집에 갈 때에 지하철 6호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것은 주황색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맴 도는 말... "삶은 죽을 때까지 자기 관리다" 내가 생각해내어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은 이미 과거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던가. 아무튼, 그런 말을 나에게 계속 말하고 있었다.
요즘 그 말을 다시 나에게 말해본다. 관리... 나는 지금 나 자신을 관리해 가고 있는가? 돌아보고 반성해야겠다. 요즘 너무 감정에 빠져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나를 추스리고, 그런 후에 주위를 둘러보자.
정말 2주만에 일기 같은 일기를 쓰는 것 같다. 지지난주는 아예 일기를 쓸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주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일기를 쓰려고 매번 그 시간에 자리에 앉아있기는 했는데, 지난 한 주 많은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리고 쓰고 싶다는 생각, 써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제야 짧게 몇 줄을 남기는 것 같다. 지금 몇 줄이나 남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생각을 하나보다. 그간 무언가 많이 느끼고 있느라 생각을 하지 못 했나보다. 느끼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선이 된 것 같다, 근래에. 좋다. 생각에 치우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외부를 접하는 것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외부에도 관심을 쏟을 무엇이 있으니까.
지지난주는... 어땠다.
지난주는... 어땠다.
지금은... 어떻다.
어떻다는 말을 해야겠는데, 지난 한 주 동안 쓰고 싶은 말이 그것이었는데, 아직도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멍하니 모니터(monitor)를 본다. 멍하니 어디를 본다. 그러면 어떤 느낌이 있다. 지지난주를 지나 지난주 내내 갖고 있던 느낌. 이제는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해야하는데...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힘을 내고... 기분도 좀 바꿔봐야겠다. 그러면 좀 정리가 되겠지. 복잡하고 혼연한 머리 속이 천천히...
요 며칠 웹에 글을 게시하지 않았다. 틈 나는 대로 수첩에 적기는 했는데, 그것을 옮길 생각은 없다. 지금 한 없이 즐겁다.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기에 바쁘다. 미처 글을 쓸, 글로 쓸 여유가 없다.
하루 종일 새해 인사를 받았다. 앞으로 한 주는 꽤나 심하게 새해 인사를 받을테고, 아마도 이번 달까지는 근근히 새해 인사를 계속 해서 받겠지.
다들 행복하라고, 건강하라고, 이런 저런 좋은 말을 해준다. 그 중에 하나는 이미 반쯤 이루어진 것 같다. 이렇게 지극히 즐겁게 한 해가 시작 되고 있다.
내일도 서울에 간다. 하룻밤 묵고 내일 모레 돌아올 생각이다. 내일도 만나고, 내일 모레도 만나고... 좋다.
2002년, 서울은 나에게 참 함든 녀석이었다. 지금에 와 서울을 보니 그리 나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은... 한 사람이 그 곳에 있다.
새해 맞아 인사를 하는 것이 그리 큰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게다가 으레 하는 것이니 별 생각 없이 인사치레로 하곤 했다.
정말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길 기원한다. 진정 좋은 새해 맞으라고 인사하고 싶다.
즐겁다. 즐겁다는 표현이 조금은 일시적인 것이고 그리 강하지 않은 정서 표현으로 느껴진다. 즐겁다는 말 보다 더 강한 표현이 필요하다.
오늘 만났다. 내일 또 만난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다. 이 밤, 둘 다 서울에 있다. 날이 밝으면 잠깐 - 분명 잠깐이라고 느낀다 - 움직이면 또 볼 수 있다. 가슴이 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바보... 난 왜 진작 이런 것을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