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어제 당직 근무를 하고 부대정밀 진단 보고서를 아침까지 마치려고 근무취침 안하고 움직였더니 몸도 피곤하고 그렇다.
자고 싶다. 자기 전에 또 허기가 져서 이것 저것 먹었다. 씻었고, 먹었고, 이제 자면 되겠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잠을 자면서 내 몸이 옆으로 퍼진다는 생각을 해야겠다. 그러면 나의 정신이 더욱 여유로워질까.
쉬고 싶다.
이제 바쁜 하루가 약간은 싫다. 바쁘다는 것, 감사해야겠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추우면 따뜻한 곳이 생각나고, 더우면 시원한 곳이 생각나지 않던가.
사람이라는 것...
You are smart, you can do everything, start now.
자신감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든 자신감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한다. 일을 하든, 연애를 하든, 삶을 살든 자신감이 필요하다. 문서를 만드는데, 과연 옳게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머뭇거리지 말지어다.
나는 나를 믿는다.
믿길 바란다.
근래 들어 나의 삶은 어떠한가?
예전에 나는 나의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던가?
갑자기 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요즘도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너는 왜 사느냐?" 사람들은 다양한 답을 한다. 나는 이런 답을 한다. "낳아졌기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죽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삶이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이렇게 덧붙인다. "삶의 시작은 주어진 것일지라도 삶의 과정은 선택해가는, 나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100% 모든 것이 완벽한 자유는 아니지만,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리고 있고, 선택을 하고 누리고,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이 답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어 자만하고 심지어는 좌절하는 것을 피하고 싶다. 더불어 너무 적은 의미에 실망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다.
갑자기 왜 다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아니다, 갑자기가 아니다. 나는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 지금 다시 이렇게 삶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은 뜬금 없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삶이라는 문제에 언제나 관심을 갖고 싶다. 비록 바쁘더라도, 바빠서 정교하게 삶을 살펴보지 못하더라도 나의 관심은 항상 삶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오늘 또 이렇게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어떤 특별한 것을 바라지는 말자.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특이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저 매일 밥을 먹듯이 하루 하루 삶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삶이 무엇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갑자기 나는 이 삶이 싫다. 근래 들어 초급 간부 자살사고니 사고 예방이니 뭐니 해서 시끌시끌하다. 오히려 그런 것이 스트레스다. 해야할 일은 많고 스트레스는 멈추지 않고...
여유를 좀 주면 좋겠다. 일을 조금 천천히 하면 안 될까? 왜 그리 빨리빨리 다그치는 것인가? 그런 것이 오히려 사고를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갑자기 피곤하다.
vergence의 의미는...?
내 별명은 vergence, 사용한지 꽤 돼 간다. 그냥... 내가 vergence인지, 내 이름이 vergence인지...
아무튼 내가 vergence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